학부모·정치권 “대책 마련하라”
교육청 “향후 회의 통해서” 느긋
‘道교육청의 배상 책임’ 이어질 것
미국 축구장의 인조잔디는 세계 최고품질이다. 영국 축구장은 종가(宗家)의 자부심이다. 그런데도 선수들이 벌벌 떤다. 인조잔디가 곧 선수생명 끝이라 여긴다. 그만한 기술이 없는 우리네 인조잔디다. 학교 운동장은 그중에서도 값싼 제품이다. 그 위를 지금도 애들이 뛰고 달린다. 자빠지기도 하고, 나뒹굴기도 한다. 영국 축구선수들이 보면 뭐라 할까. 즐라탄이 보면 뭐라 할까. 혹시 한국 아이들이 목숨 걸고 논다고 하지 않을까.
더 기가 막힌 사실이 폭로됐다. 이보다 더 불량한 인조잔디가 학교에 깔리고 있었다. 공사 기준에 충격흡수성이라는 게 있다. 사람이 뛸 때 받는 완충치를 정한 기준이다. 국가 표준인 KS에도 있다. ‘평균치에 50% 이상 되어야 한다’고 딱 정해져 있다. 학교 실상은 턱없었다. 본보가 조사한 7개 학교 운동장이 모두 30%대였다. 26%로 시공된 운동장도 있었다. 육상 트랙 바닥이 35%다. 애들이 지금 육상 트랙에서 놀고 있는 것이다.
공사비 빼먹기였다. 공사 시방서에는 충전재 기준도 정해져 있다. 1㎡당 11㎏ 이상이다. 이 좁쌀 만한 게 꽤 비싸다. 이걸 빼먹고 있었던 것이다. ‘3분의 1만 넣었다’는 업자의 고백이 나왔다. ‘6천만원쯤 남겨 먹었다’는 증언도 했다. 위법이다. KS로 정한 기준을 위반했다. 범죄다. 시방서를 속인 공사비 횡령이다. 이 위법과 범죄의 희생양은 아이들이다. 속살이 드러날 정도로 까지는 아이들, 걷지 못할 정도로 다치는 아이들이다.
그때, 배가 뒤집힌 걸 보고 뭐라 했나. 운송비 아끼려는 어른들의 탐욕이라 하지 않았나. 그 탐욕이 아이들을 죽였다고 하지 않았나. 그래서 국민이 분노했고, 선장이 징역 갔고, 대통령이 쫓겨났다. 그것과 이게 뭐가 다른가. 돈 남기려고 엉터리 운동장을 깔았다. 똑같은 탐욕이다. 아이들이 다치고 부상당한다. 똑같은 희생이다. 학부모도, 국회의원도 그래서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전수 조사해 대책을 내 달라고 촉구한 것이다.
교육청도 국감장에선 ‘알았다’고 했다. 그러더니 이제 와서 딴소리다. “향후 회의를 통해서…해결에 힘쓰겠다”. 이렇게 느긋해도 되나. 인조잔디 운동장만 도내 311개다. 양심을 고백한 업자는 ‘내가 공사한 (엉터리)운동장이 100개쯤 된다’고 했다. 본보가 조사한 7개 운동장은 모조리 엉터리였다. 대부분 엉터리일 것이다. 아이들이 이 시간에도 거기서 뛰고 논다. 오늘 다칠 수도, 내일 다칠 수도 있다. 곧 땅 어는 겨울까지 온다.
대한민국 학교는 복지천국으로 가는 중이다. 공짜로 밥 준다. 급식 복지다. 공짜로 옷 준다. 교복 복지다. 인조잔디 문제도 그렇게 봐야 한다. 맘 놓고 뛸 권리, 안 다칠 권리가 학생에게 있다. 공짜 밥, 공짜 교복보다 훨씬 소중한 기본 복지다. 표(票)는 덜 될지 모른다. 지나간 과오(過誤)가 얘기될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미적대면 안 된다. 보름여를 끌다 보니 이런 말까지 나오는 거 아닌가. ‘교육청 담당자가 이를 몰랐을 리 없다.’
어쨌든 모두가 알았다. 충격흡수성 부족, 불량 인조잔디…. 학교도 알았고 교육청도 알았다. ‘몰랐다’는 핑곗거리가 사라진 것이다. 이제부터 인조잔디 사고는 학교와 교육청의 책임으로 갈 것이다. 관련 재판 때마다 교육감에겐 이런 판결문이 보고될 것이다. “충격흡수성이 부족한 인조잔디 운동장 상태를 알면서도 이를 보수하지 않은 책임이 교육청에 있다. 그러므로 사고를 당한 학생 피해의 ○○%를 경기도교육청이 배상하라.”
主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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