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분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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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습관 중에는 ‘후회’(後悔)라는 것이 있다. 사전적 의미로 “이전의 잘못을 깨닫고 뉘우침”이라고 하지만 대체로 저지르고 난 후나 지난 간 후에 “이렇게 할걸!” “잘할걸!” 하고 푸념하는 단순한 과정이다. 그러면서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통탄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후회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후회하고 난 후의 변화이다. 이것을 ‘반성’(反省)이라고 한다. 후회가 지난 일을 뉘우치는 것이라고 한다면 반성은 자기성찰이다.

 

공자의 제자인 ‘증자’(曾子)는 날마다 세 번씩 자기성찰을 했던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 사람을 도와주면서 정성을 다했는가?”(爲人謀而不忠乎) “친구와 사귀면서 믿음을 잃지 않았는가?”(與朋友交而不信乎) “스승에게 배운 것을 익히지 못했는가?”(傳不習乎) 섬김과 신의와 실천에 관한 삶의 전반적인 반성을 하며 살았다는 말이다. 자기중심이 아니라 이웃중심으로 살면서 삶에 최선을 다하면서 옳게 살았는지 되돌아보며 자신을 성찰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바른 성찰을 제공하는 단초를 ‘분별력’(分別力)이라고 할 수 있다. 분별력이란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능력이다. 이것은 또한 정확한 ‘판단력’(判斷力)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 현상을 인식한 후 사회적 또는 도덕적인 합의에 따른 논리적 판정인 판단력이 뒷받침될 때 올바른 분별력을 발휘할 수 있고, 자기 성찰이 가능하며 비로소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다.

 

그렇다면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능력인 분별력의 기준은 무엇일까? 어디에 그 기준을 두어야 할까? 사도 바울은 신약성서 로마서 12장 2절에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그 기준을 제시했다.

 

‘하나님의 뜻’이 분별력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바울은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전제하고 있다. 무슨 말일까? 바르지 못한 세대를 답습하려 하기보다 마음을 새롭게 다 잡아 하나님이 기뻐하실만한 선한 행위의 결정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선한 행위, 하나님이 기뻐하실 선한 결정이 분별력을 위한 판단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할 때, 이것은 지구 상에 존재하는 대부분 정상적인 종교의 신들이 바라는 바이기도 할 것이다.

 

통계에 의하면 지구상 인구의 80% 이상, 우리나라 인구의 50% 이상이 종교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신의 뜻에 따라 바른 판단력의 기준을 가지고 옳고 그름을 분별하며 살아야 할 사람이 최소한 반은 넘는다는 의미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머지 사람들은 예외라는 말은 아니다. 사람은 기본적인 종교의 심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상적인 심성의 소유자라면 선한 행위의 결정을 신의 뜻이라 여기며 살아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별력 없이 거짓 뉴스를 퍼뜨리며 사실을 오도하려는 사람들은 무슨 배짱일까? 가끔 카톡이나 편지로 거짓 뉴스가 배달될 때마다 불쾌한 것은 물론이지만 판단 결정의 결여로 분별하지 못하는 맹신적이고 무조건적인 그들의 행위가 자칫 그들이 믿는 신을 욕되게나 하지 않는지 심히 염려스럽다.

 

강종권 구세군사관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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