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차 유가보조금이라는 게 있다. 화물ㆍ버스ㆍ택시 등 운송업계에 늘어난 연료비 부담을 간접 지원하는 돈이다. 에너지 세제개편으로 이들의 부담이 늘어난 2001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생업 운전자와 대중교통사업자에게 주는 환급제도로 사실상의 복지성 지원제도다. 17년이 지났지만, 이 돈의 정확한 흐름을 파악하는 노력은 없었다. 특수한 직업군에 한해 적용되는 제도라 일반인에겐 관심도 없었다. 경기도가 그 실태를 조사했다.
엉망이었다. 줄줄 새고 있었다. 책임 보험을 제때 가입하지 않은 운전자 189명에게 1천140차례에 걸쳐 3천900여만 원이 지급됐다. 운행 정지 등 행정 처분을 받고 있는 운전자에게도 보조금을 지급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차고지 임차 기간이 만료된 474명의 화물차 소유자에 대해서도 보조금이 나갔다. 규정대로라면 이들에게는 등록 취소 등 행정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 운전면허가 취소된 운전자 211명이 보조금 지급 시스템에서 정리되지 않았던 사실도 적발됐다.
도내 31개 시군을 전부 조사한 것이 아니다. 수원, 고양, 성남 등 12개 시군만을 살폈다. 조사 대상 기간도 2015~2017년까지 3년치만 봤다. 그런데도 이렇게 다양하고 어이없는 오지급 사례들이 쏟아져 나왔다. 가장 기본이어야 할 행정 시스템 관리부터가 엉망이었다. 혈세 집행이라는 기본적 책임의식을 찾기 어렵다. 책임 있는 시군 담당 공무원 22명이 도로부터 징계 처분을 받았고, 잘못 지급된 보조금도 환수하라는 조치가 내려졌다.
사립유치원비리 사태가 우리에게 준 충격은 크다. 연간 2조 원 가까운 혈세가 어디로 갔느냐가 아니다. 국민이 낸 세금이 이처럼 허술하게 집행되고 있었느냐다. 유치원에 이어, 어린이집 지원금, 장애학교 지원금 등에서도 횡령이 있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바야흐로 복지 천국의 틈새에서 보조금ㆍ지원금 빼먹기 경쟁이라도 벌어진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개된 유가보조금 오지급 결과다 보니 그 의미가 결코 가볍지 않다.
수챗구멍이 열린 저수조엔 물이 차지 않는다. 지금 우리 사회는 복지라는 저수조에 돈을 쏟아붓고 있다. 그런데 그 저수조에 수도 없는 수챗구멍이 생겼다. 너도나도 퍼주기 경쟁에만 정신이 팔려 이 수챗구멍을 보지 못했다. 사립유치원 사태나 유가보조금 사태는 이 거대한 사회적 손실의 극히 단편적인 일면을 보여준 것에 불과하다. 문재인 대통령도 28일 “국민이 납부한 세금이 사익에 유용되는 일이 다시는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단, 사립유치원 지원금 횡령 사태에만 적용될 특별지시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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