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흩날리는 낙엽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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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라는 계절은 황금 물결이 넘치는 들녘과 여러 빛깔로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는 낙엽이 떠오른다. 낙엽이 떨어져서 도량에 흩날리는 것을 보면서 일 년이라는 시간이 바쁘게 나의 곁을 스쳐갔다는 상념이 일어나고 세상이 또한 과거의 흐름을 반복하는 주기에 묵묵히 앉아서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본다.

 

이 시간은 수확을 준비하였던 농부에게는 소중한 결실의 시간이었고,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분들께는 아쉬움이 남는 시간이었으며, 사춘기의 청소년에게는 성장의 시간이었고, 학자들에게는 학문의 성취를 쌓아가는 시간이었으며, 진리를 추구하는 수행자인 나에게는 내면을 관조하는 시간이었다. 낙엽으로 자연의 주기를 가르치는 나무들은 다음 세대를 키우고 독립시킨 시간이었고 스스로가 휴식에 들어갔으며 내년의 새싹을 피울 준비하는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인간들이 낙엽의 아름다움에 취하여 낭만을 즐기는 것과는 오묘한 대조가 일어난다. 이러한 부조화는 또 하나의 커다란 자연의 울타리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고 있고, 인간은 그 질서 속에 우리에게 필요한 가치를 부여하고 우리의 주관에 따른 문화를 이루어가고 있다. 이러한 문화의 다양성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서 특유의 문화를 연출시켜 화합을 이끌기도 하고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또한 인간의 역사는 종교와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으며, 동서양의 교류를 통한 문화의 혁신이 일어났으나 전쟁과 갈등에 의한 많은 희생도 발생하였다.

 

부처님 가르침의 중요한 내용으로 연기와 윤회가 자리 잡고 있다. 연기는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 그러므로 이것이 없어지면 저것도 없어진다”는 언어적 표현이고, 윤회는 계속 반복한다는 상징성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불교적 의미를 인간세계에 비유하여 적용시켜본다면 인간은 인간이 설정하여 놓은 경계 안에서 살아가면서 부딪히고 갈등하면서 내면의 관조와 보편적인 이성을 증가시켜 다른 존재들과의 차별을 이루어 가는 것이다.

 

불교의 우주관에서는 여섯의 범주로 분류하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인간들이 꿈꾸는 극락이라는 천상계에서는 환락이 많아서 오히려 중생들이 열망하는 깨달음이라는 대전제가 천상계에서는 크게 중시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화엄경』에서는 선재동자가 선지식을 찾아서 구법여행을 이어가고 있는데 깨달음을 인도하는 스승으로 뱃사공과 일반인의 거사 및 여인들도 등장하고 있다. 즉 인간세계에 존재하는 중생들은 모두 부처의 스승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요즈음은 가정에서 애완견이나 반려동물과 많이 생활하는 추세로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동물들이 인간의 말을 잘 이해하고 인간의 역할을 실천하기 때문에 증가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이것에는 일반의 사람들이 가진 사유의 범주에서와 다른 개념을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과 동물이라는 수직에 의한 상하 관계와 나의 중심으로 생각을 펼치려는 이기적인 생각이 합쳐진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러한 이기적인 생각을 극복하는 방법은 대중을 중심으로 사유의 폭을 확장해야 한다. 이 세상은 인간의 것만도 아니고 신에게 속한 것도 아니며, 결국 육도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들의 삶의 무대이다. 가을에 곡식이 익고 나무가 단풍으로 치장하는 것은 시간의 주기에서 치열하게 생존을 위하여 몸부림쳤던 삶의 생생한 장면들이다.

인간들이 우리 것이라는 오만과 편견에서 세상을 바라볼 때에도 다른 존재들은 스스로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 이제는 치열한 삶을 잠시 멈추고 자신을 관조하는 나무처럼 나의 내면의 부처를 찾아서 자신을 알아가는 시간에 이르렀음을 낙엽은 날리면서 나를 일깨우고 있다.

 

세영 수원사 주지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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