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을 훔쳤다. 배고픔 때문에였다. 빅토르 위고는 그 장발장(Jean Valjean)을 사회적 희생양이라 했다. 꿔 준 돈을 받으려 했다. 받을 수 없자 살 1파운드를 떼려 했다. 햄릿은 그 샤일록(Shylock)을 악덕 사채업자라 했다. 범죄라는 게 그런 것이다. 범죄를 평하는 별개의 잣대가 있다. 이때의 잣대는 범죄로 얻으려는 대가다. 대가의 내용에 따라 비난 가능성은 달라진다. 눈물 젖은 빵에는 동정이, 살 1파운드에는 비난이 간다.
‘재판 거래’라면서 시작했다. 누가 지었을까. 기가 막힌 명명(命名)이다. 재판을 사고팔았다는 뜻이다. 재판이 거래의 물건이었다는 말이다. 법원 역사에 없던 참담한 단어다. 사회적 평가가 가혹할 수밖에 없었다. 전례 없는 공분(公憤)이 일었다. 법원이 ‘장사치 그룹’으로 전락했다. 전직 대법원장은 그 거래의 수괴로 몰렸다. 따랐던 이들도 범죄 집단이 됐다. 전 차장은 그래서 구속됐고, 전 대법원장도 그렇게 될 것 같다.
그런데 거래설(說)의 객체가 상고법원이다. 양 전 대법원장이 상고법원을 바꿔먹으려 했다고 한다. 개인의 치적으로 삼으려 했다고 한다. 숙원을 풀어낸 대법원장으로 남으려는 욕심이란 뜻이다. 인사권을 키우려는 탐욕도 있었다고 한다. 상고법원 판사는 고등법원 부장판사들의 길이다. 이들을 상대로 인사권을 휘둘러 보려 했다는 뜻이다. 그래서 재판을 정권 입맛에 맞췄다고 한다. 세상천지에 나돈 재판거래의 가설이다.
그런데 그리 치가 떨리진 않는다. 상고법원이 뭔가. 대법원 사건을 나눠갖는 법원이다. 대법원 사건 중 단순 사건을 맡는다. 지금 대법관은 혼자서 3천402건을 처리한다. 누군가의 생명과 재산이 걸린 사건이다. 그 중한 결정을 한 사람이 3천402건씩 한다. 기록을 다 살핀다면 거짓말이다. 법원도 정부도 십수 년째 고민해온 숙제다. 상고법원 신설은 그래서 나왔다. 뭐라도 해야 하니까 내놨던 대책이다. 이게 뭐가 잘못인가.
개인의 치적? 아직 없지만, 꿈꿨다 치자. 인사권에의 탐욕? 아직 없지만, 품었다 치자. 그렇더라도 그게 상고법원이 국민에 줄 실익을 덮진 못한다. 국민이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 그런 건 헌법 27조 3항에만 있다. 민사 본안 사건 1심은 5개월 내 끝낸다? 이 규정 다 지키면 판사 태반은 죽어나간다. 이걸 고쳐보려는 대안이었다. 이런 상고법원 추진이 왜 재판 거래의 범죄 대상이 되나. 처음부터 그렇게 몰면 안 되는 거다.
8월이면 재판거래가 정설처럼 여겨지던 때다. 그때 이용우 전 대법관이 이런 예언을 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포함해서 전 현직 대법관들이 검찰의 포토라인에 설 것이다…(검찰이)대법원 재판의 합의과정을 추궁할 것이다…하지만 아무리 조사해봐야 재판거래 의혹은 혐의 없음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그러면 검찰은 꿩 대신 닭이라도 잡으려고 재판거래와 관계없는 대법원의 다른 비리를 들여다보려 할 것이다.”
얼추 맞아가는 듯하다. 재판거래라는 명명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재판거래로 죄 삼기 쉽지 않음을 알아서다. 상고법원 논란에 국민이 공분하지 않음을 알아서다. 대신 그 자리를 ‘사법 농단’이란 명명이 차지했다. 보다 넉넉하게 엮어갈 수 있는 덫이라 여기는 듯하다. 그도 그럴게, 웬만하면 다 사법 농단이다. 블랙리스트 작성, 특정 법관 인사 불이익, 부적절한 지시…. 하다못해 대법원장 관사 담장 수리까지도.
장발장에게 눈물 젖은 빵, 그건 범죄를 동정케 하는 연결이었다. 샤일록에게 1파운드 살, 그건 범죄를 더 비난케 하는 연결이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게 상고법원 거래, 이건 어디로 연결될까. 어쩌면, ‘해야 할 일을 했다’는 당당함으로 연결될 것이다. 어쩌면, ‘이념 쟁투에 피해자가 됐다’는 억울함으로 연결될 것이다. 어쩌면, ‘대법 개혁을 위해 당신들은 그나마라도 하고 있느냐’는 반문으로 연결될 것이다. 아닌가.
포토라인에 이끌려 서게 될 양 전 대법원장의 말을 기다려보자.
主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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