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한해의 끝자락에 이르렀고 바쁜 현대 생활에 쫓기던 일상을 반짝이는 추위에 다시 느끼게 된다. 연말이라는 시간은 우리라는 공동체를 생각하고 주위의 힘들었던 이웃을 살펴보게 하는 시간이고 일 년의 숨 가빴던 나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며 우리들의 문화가 얼마나 변화되었는가를 살펴보는 시간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문화적으로 변화가 많이 일어났는데 세계에 한류라는 문화가 확산되는 점은 긍정적인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다. 그렇지만 인간의 내면에는 특유한 정서가 있는데 하나는 사랑이고 다른 하나는 미움이다. 어찌 보면 역설적으로 들릴 수 있겠으나 사랑이 없는 미움도 없다는 뜻이다.
불교의 가르침 중에서는 고통을 여덟 가지의 범주로 나누고 있는데 생로병사를 제외하고 그다음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고통과 싫은 사람과 만나야 하는 고통이 있다. 이러한 만남과 헤어짐은 일상에서 일어나게 된다. 눈을 뜨고 활동을 시작하며 남과의 관계가 이루어지는 순간부터 즐거움과 갈등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랑과 갈등은 과거의 어디에서와 어느 시간에서나 존재하였고 미래에도 존재하겠으나 인간은 특유의 활동적인 방법으로 이것을 극복하여 왔다. 종교와 문학 및 예술이 대표적인 장르인데 모두가 인간의 성숙된 문화로 이끌었던 방편들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세련되고 고도화된 문화가 때로는 아주 사소한 문제에서 크게 확대되는 경향이 있다.
현대사회는 아주 가깝고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있다. 세계의 어느 지역이라도 하루 안에 접근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 발전하였고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정보는 인터넷이라는 수단을 통하여 지구촌의 일상을 눈앞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이러한 빠른 현실에서도 인간의 사유 방식은 어찌 빠르게 발전하지 않는가? 이것의 이면에는 자기애라는 이기적인 사랑이 자리 잡고 있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자기애가 없다면 남을 사랑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인간은 부모가 교육을 시작하면서 남과의 관계인 소통을 가르치고 또한 뒤에 성장하면서 양보와 절제를 요구받게 된다. 배려와 헌신이 없었다면 인간이 만물의 주역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고 또한 과학의 힘으로 신의 영역까지 접근할 수 있었을까? 이와 같은 여러 과정에는 자기애를 발전시켜 남까지도 포용하는 확대된 자기애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의 우리나라의 자화상은 어떠한가? 여러 부분에서 자신이 너무 강하게 작용하여 남을 경시하는 문화가 많이 눈에 띈다. 정치적인 갈등과 경제적인 갈등은 사회의 여러 부분을 혼란으로 몰아가고 있고 대중들은 각자의 이익을 찾아서 갈등을 부채질하고 있다. 그러면서 양보와 타협이라는 단어는 기억 속에서 잊혀져가고 있다. 이것을 남의 탓으로 돌리고 나는 자유로울 수 있는가?
우리의 선조들이 물려주었던 공동체의 삶의 모습은 어느 때인가부터 찾기 어렵고 학창시절부터 갈등과 무질서가 눈에 많이 목격되는 우리들의 현실은 언제나 성숙되는 것인가. 연말이 다가오면서 이전의 모습보다는 많이 성숙되었으리라고 기대하였던 정치와 경제는 많이 개선되지 않았다. 이 땅에 살아왔던 조상들이 오천 년의 역사를 이어왔던 것은 강인한 생명력도 있었겠으나 근원적으로 소통을 통한 배려와 화합이 자기애를 넘어서 사회로 승화되었다고 생각된다.
이 땅에 살아왔던 조상들은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와 소통과 화합을 일상에서 실천하였던 행동가였다. 한해가 저물어가는 이때는 추위와 외로움을 더욱 느끼는 때이다. 나를 우선시하는 것이 이기적인 삶이 아닌 남과 조화로운 삶을 통하여 사랑과 미움을 잘 조화시키는 삶의 방식을 되돌아 볼 때이다.
세영 스님 수원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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