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타인능해(他人能解)

최원재 문화부장 chwj74@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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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능해’는 전남 구례에 있는 운조루의 쌀뒤주 마개에 새겨진 글자다. 아무나 열 수 있다는 의미로 운조루의 주인이 쌀 두 가마니 반이 들어가는 커다란 뒤주를 사랑채 옆 부엌에 놓아두고 끼니가 없는 마을 사람들이 쌀을 가져가 굶주림을 면할 수 있게 했다는 이야기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직접 쌀을 퍼줄 수도 있겠지만 그 사람들의 자존심을 생각해 슬그머니 퍼갈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한 배려는 운조루의 굴뚝에서도 드러난다. 부잣집에서 밥 짓는 연기를 펑펑 피우는 것이 미안해 굴뚝을 낮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렇게 뒤주는 열고 굴뚝은 낮춘 운조루는 6·25전쟁 때 빨치산의 본거지였던 지리산 자락에 있었지만 화를 당하지 않았으니 대대로 나눔을 실천했던 정신이 운조루를 지킨 셈이다.

또 300년 넘게 14대째 내려오는 경주의 유명한 최부자 집의 가훈(家訓)을 보면 여섯 번째로 ‘십리 안에 밥 굶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가훈이 있다. 옛날 부자는 이렇게 가훈으로 정하여 부자의 도리를 후손들에게 가르쳐왔다. 그래서 역사 있는 부자는 자신이 사는 고을 주민들은 절대 굶기지 않았다. 그들은 흉년으로 기근이 닥치면 반드시 큰 굿을 올렸다. 굿을 올려 마을의 평안을 빌고, 더 나아가 떡, 과일 등 굿에 쓸 음식들과 제수용품을 사들여서 마을 경기를 좋게 했다. 굿이 끝나면 노인부터 아이까지 배불리 먹지 못한 주민들에게 쌀과 떡을 나눠줬다.

수원 경기도청 오거리에는 사랑의 온도탑이 있다. 이 온도탑은 경기도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난달 20일 설치한 것으로 목표액의 1%가 모금될 때마다 1도씩 오른다. 지난 19일 기준으로 25도를 기록 중인데 올해 목표액이 316억 원인 것을 고려하면 약 79억 원이 모금된 것이다. 지난해 캠페인 기간 316억 원 모금을 목표로 했으나 277억여 원 모금에 그쳐 사랑의 온도탑 수은주가 최종 87.6℃에 머물렀다. 작년에 급격히 식었던 온정이 올해도 되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경기 불황으로 소비가 위축되는 상황에서 남을 돕는다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추운 겨울 소외계층들에게 온정의 손길이 끊어진다면 그들은 이 겨울을 어떻게 날 수 있을 것인가. 다들 어렵지만 조금씩 나누고 배려하는 온정의 손길이 되살아 나길 기대해 본다.

최원재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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