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양국 간에 위안부 재단 해산, 강제징용 판결 이행과 일본 초계기에 대한 우리 군함의 레이더 조준 공방을 둘러싸고 한 치의 양보 없는 대치가 이어지고 있다. 주일대사를 지낸 공로명 전 외교통상부장관은 지금의 한·일 관계는 역대 최대의 위기라고 말했다. 과거에도 한·일 관계는 위기의 연속이었으나 지금처럼 구조적이고 앞이 안 보이는 상황은 아니었다.
한·미 관계도 상당히 미묘한데 한·일 관계까지 무너지면 국가 외교 프레임 전체가 무너지게 된다.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이 이렇게 위태로운 건 처음이다. 강경화 장관은 존재감이 없어지고 외교부 내 일본 전문가들은 냉대를 받고 있다. 현 정부의 모든 통치가 청와대에서 일방적으로 이뤄진 결과다.
우리 안보정책의 출발점은 일본과 미국이다. 일본 열도에 전개된 주일미군과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주한미군은 같이 움직이는 관계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본토 미군은 한반도에 투입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을 통해 투입된다. 보급도 마찬가지다. 한·일간의 안보 고리는 필수적이며 싫든 좋든 일본과의 유대는 절대적이다. 안보뿐만 아니라 경제, 문화 등 각 분야에 걸쳐 한·일 양국은 협력하고 같이 가야 하는 운명이다.
반일과 혐한은 결국 국민감정의 악화로 인한 악순환에서 비롯된다. 여기에 양국 정부와 일부 정치인들이 이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못된 습성 때문에 더욱 확대 재생산됐다. 우리는 지금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구축이 이뤄질 수 있는가 하는 중대한 시점에 서 있다. 미국과 중국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대일(對日)외교는 노련하게 다뤄야 하는데 아무리 봐도 막후 해결사도 없고 전문가도 없는 실정이다. 이제부터라도 국민의 반일감정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악습을 버리고 사안별로 접근해야 한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강제징용 피해 해법으로 우리 정부와 기업, 일본 강제징용 수혜기업 3자가 출연하는 피해배상 기금을 만들 것을 제안했다. 독일에도 유대인 피해자와 동유럽 강제노동 피해자들에 대해 ‘기억 미래책임재단’을 만들어 배상한 사례가 있다. 일본 초계기 문제는 당국끼리 자주 만나 해결책을 모색하다 보면 풀릴 수 있는 문제다. 서로 비난만 하다 문제를 더욱 키워서는 안 된다.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태도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하지만, 그렇다고 현재와 미래까지 도외시해선 안 된다. 상대방의 잘못만 지적하고 비난만 하다가는 회복 불가능의 사태가 올 수 있다. 1998년 ‘김대중-오부치 한일 신 파트너십 선언’이 있었다. 이 선언의 효과로 일본 대중문화 개방 문제가 해결됐고 한류가 일본에서 각 분야에 걸쳐 확산했다. 그 결과 일본 내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20% 이상 증가했다. “외교는 지난 과오의 크기를 볼 게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이익의 크기를 봐야 한다”는 말이 있다. ‘문재인-아베 제2 한일 파트너십 선언’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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