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다. 새해에는 무엇을 결심하고 계획하는지를 생각하고 또 말들을 한다. 나는 지천명(知天命)을 넘긴 지난해에 이어 이 생에서 내게 주어진 길은 과연 무엇인지 물어본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답답했다. 왜인지는 모르는데, 답답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다니면서 또 더 나이가 들면서 그 답답함이 어디로부터 오는지를 희미하게나마 알아는 것 같다. 길을 잃은 것 같으면서도 어찌어찌 길을 찾아가는 듯했다.
<전등록(傳燈錄)> 권11에 따르면, 9세기 무렵 무주(州) 사람인 구지(俱) 선사가 살았다. 구지가 젊은 날 좌선으로 일관하면서 용맹정진(勇猛精進)하던 시절 한 비구니가 그를 찾아와 세 바퀴를 돈 다음 ‘한 마디’를 제대로 한다면 갓을 벗겠다고 했다. 그러나 구지 선사는 그 ‘한 마디’를 하지 못했다. 말문이 막혔다. 그 ‘한 마디’가 무엇인지 구지에게는 화두가 되었다. 천룡 선사를 만나 깨닫기까지 그의 수행이나 고뇌에 찬 이야기는 알 수 없지만 추측은 할 수 있다. 그는 여러 선지식을 찾아다니고, 열심히 공부했지만 역시 어둡고 희미한 길을 가면서 잘 가고 있는지 회의에 빠졌을 것이다. 마침내 그는 천룡(天龍) 선사를 만나 깨달았다고 한다. 구지는 입적할 때까지 천룡 선사의 손가락 하나를 세워 올리는 것을 통해 깨달았고, 그것을 평생동안 써도 다 못썼다고 하고 입적했다.
<무문관(無門關)> 3칙 구지수지(俱指竪指) 이야기는 구지가 자신을 따라하는 한 사미승을 깨우친 이야기다. “구지 선사는 누가 무엇을 물어도 항상 손가락 하나만을 세웠다. 그러던 중 어느 날 한 방문객이 한 사미승에게 ‘선사는 어떤 법요(法要)를 가르쳐주는가?’ 하고 물었다. 이에 사미승은 역시 손가락 하나를 세워 보였다. 나중에 선사는 이 말을 듣고 그 사미승에게 물었고, 사미승이 손가락을 세워 올렸다. 그 순간 선사는 이 사미승의 손가락을 잘라버렸다. 이 사미승은 너무 놀랐고 너무 아팠다. 통곡을 하며 달아났다. 그때 선사가 그 사미승을 불렀다. 이 사미승이 머리를 돌리자, 그때 선사가 손가락 하나를 세워 보였다. 그 순간 그 사미승은 바로 깨쳤다.”
보통 이 이야기를 들으면 구지의 행동이 괴팍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미승이 구지 선사의 손가락을 따라한 것은, 구지 선사의 손가락만 보았기 때문이다. 견지망월(見指忘月), 달을 보라 가리켰더니 달을 가리킨 손가락만 쳐다보는 꼴이다. 사미승의 손가락을 잘라낸 것은 손가락에 대한 집착을 놓고 달을 보라는 구지의 극약처방이었다. 사미승이 고개를 돌려 선사가 세운 손가락을 보았을 때, 사미승은 더 이상 없는 손가락이 아닌 손가락 너머의 달을 마주한 것이다.
깨친 후 나와 세상은 무엇이 달라질까?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런데 다른 한편 완전히 다른 나,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된다. 하루하루 일상을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일들이 여전히 똑같이 일어난다. 배도 고프고, 졸리기도 하다. 그런데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잠자는 것이 일상의 권태로운 일이 아니라, 늘 새로운 일이 된다. 일상(日常)이 곧 비상(非常)이 된다.
김원명 한국외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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