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장기 농성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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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75m 굴뚝에서 고공 농성을 이어온 파인텍 노동자들이 지난 11일 마침내 땅을 밟았다. 2017년 11월12일 서울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에 오른 지 426일 만이다. 1년 2개월 동안 농성자들은 굴뚝위 폭 80㎝ 공간, ‘하늘감옥’에서 두 번의 겨울과 한 번의 여름을 버텨냈고, 이달 6일부터는 단식투쟁까지 들어갔다. 늦었지만 파인텍 노사가 11일 극적으로 협상을 타결했고, 두 노동자의 고공 농성도 끝이 났다. 이날 오후 땅을 밟은 노동자들은 얼싸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화학섬유 제조회사인 파인텍의 노사 갈등은 스타플렉스가 2010년 파산기업인 한국합섬을 인수해 스타케미칼을 세우면서 시작됐다. 노동자들은 사측이 2년 연속 적자를 이유로 스타케미칼을 청산하고 권고사직ㆍ해고를 감행하자 복직 투쟁을 벌였다. 2014~2015년 408일간 굴뚝농성을 했고, 1년여 만에 공장 가동이 중단되자 2017년 또다시 농성에 돌입했다. 426일 만에 얻어낸 것은 ‘3년간 고용 보장’과 ‘최저임금(시급)+1천원의 기본급’이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두 조합원이 살아 내려와서 천만다행”이라면서도 “웃어야 될지 울어야 될지 착잡한 심정”이라고 밝혔다. 심 의원은 “왜 노동자들이 자꾸 굴뚝 위로 올라가느냐고 묻는다”며 “땅을 딛고서는 민주시민으로서의 존재를 알릴 수 없기 때문이고 삶을 던지는 극한투쟁을 통해서야 세상에 진실을 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노사간 장기간 갈등은 코레일과 쌍용자동차에도 있었다. KTX 승무원 180여 명은 해고 12년 만인 지난해 7월 코레일과 정규직 전환 복직에 합의했다. 쌍용차 사태는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비롯됐다. 중국 상하이자동차가 2009년 1월 법정관리를 신청했고 회사는 4월 정리해고를 결정했다. 노조원들은 5월21일 평택공장을 점거하며 맞섰다. 농성 강제 해산과정에서 노조원 64명이 구속되고 경찰도 100여 명 다쳤다. 경영사정이 나아지면서 쌍용차는 해고자를 재고용해오다 지난해 9월 노사가 119명 전원 복직에 합의했다.

그러나 아직도 장기 농성 중인 노동자들이 있다. 기타 생산업체였던 콜텍 노동자들은 13년째 농성 중이다. 콜텍의 모기업 콜트악기는 2006년 당기순손실을 이유로 2007년 4월 인천공장 근로자들을 한꺼번에 정리해고 했다. 구미 아사히글라스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길거리로 내몰린 지 3년 7개월째 찬 바닥에 앉아 복직을 외치고 있다. 전주에선 택시노동자가 20여m 높이 조명탑 위에서 500일 가까이 망루 농성을 하고 있다. 생존을 위한 외롭고 눈물겨운 투쟁이다. 이들 문제도 하루빨리 해결되길 기대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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