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이화여고 학생들이 홍대역 입구에서 국민청원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들의 선배인 유관순 열사의 상훈 등급을 현재의 3등급에서 더 높여 달라는 것이었다. 선배를 생각하는 후배들의 순수한 마음이 참 아름다웠지만 그런 선후배 관계를 떠나 이 나라 항일독립운동사에 끼친 유관순 열사의 행동이 제대로 평가 받아야 한다는 데서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다.
이와 같은 서명운동은 천안시 병천에 있는 유관순기념관에서도 방문객을 상대로 벌이고 있다.
국가 서훈에는 1등급에서 5등급까지 나뉘어 있다. 그런데 유관순 열사는 3등급인‘독립장’.
독립운동에 등급이 있을 수 없으나 유 열사가 3등급이라는 데는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 대체적 반응이다.
1919년 3ㆍ1 운동의 지도자 33인에 대한 일본 식민지하의 법정선고가 1년6개월에서 3년 정도였는데 비해 유관순 열사는 1심에서 5년형 2심에서 3년형을 선고 받은 것을 보더라도 3ㆍ1운동에서 그의 역할이 얼마나 크게 평가되었는지 알 수 있다. 더욱이 유관순 열사는 꽃다운 18세 여학생의 몸으로 모진 고문 끝에 생명을 조국에 바쳤다.
그는 숨을 거두면서도“ 나라에 바칠 목숨이 하나 밖에 없다는 것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이라”고 유언을 남겼다.
정말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 가슴을 숙연하게 하는 유언이다.
그래서 ‘3ㆍ1운동’하면 유관순을 생각할 만큼 그는 항일 독립운동의 상징처럼 되어 있는데 어떻게 3등급인지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외국에서 보는 시각도 비슷한 것 같다. 그 대표적인 것이 미국 뉴욕주가 1월14일을‘ 유관순의 날’로 지정하기로 한 것이다. 주 단위로 특정 외국인을 이렇게 기념일로 정하는 것은 미국에서도 매우 이례적이라는 데서 그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뿐만 아니라 미국의 권위지 뉴욕타임즈는 유관순 열사에 대한 기획연재물을 싣고 유열사는 일제 저항의 기폭제가 되었다고 평가했다.
특히 미국인들은 일제의 혹독한 탄압에도 비폭력으로 항거한 것을 높이 기리고 있다. 이 때문에 일본측은 뉴욕주 상ㆍ하원이 ‘유관순의 날’ 제정에 반대하며 여러 방면에서 로비를 전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관순을 이야기할수록 자연이 일제의 폭력과 잔학성이 들어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1919년 4월1일 천안 시골의 아우내장터에서 벌어진 만세운동때 일본헌병들은 유관순 열사의 아버지 유중권을 총으로 쏴 죽였고, 이를 보고 달려드는 어머니도 칼로 찔러죽이는 만행을 서슴없이 저질렀다. 이것을 목격한 유관순열사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뿐만 아니라 김구응이라는 사람에는 총을 쏘고 다시 두개골을 박살내기도 했다.
이렇게 하여 이날 조그만 시골장터에서 만세를 부르다 일본 헌병에 의해 피살된 사람이 19명이나 되었고 수십명이 부상을 입었다.
그리고 유관순 열사는 천안으로 압송되었다가 다시 공주감옥으로 이송되면서 모진 고문을 당했고 마지막에는 서대문 형무소에서 1920년 9월28일 18세 소녀의 몸으로 숨을 거두었다.
이제 우리는 올해로서 3ㆍ1운동 100주년을 맞는다. 그리고 우리는 3ㆍ1운동이 독립운동에 대한 민족적 자각을 일깨웠다는 데 이의가 없다.
그렇다면 그 중심에 있던 인물들에 대한 서훈 등급도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3등급의 유관순 열사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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