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한국 사회는 자유와 인권에 대한 요구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뜨겁다. 자유와 평등, 정의, 인권 등의 가치는 많은 이들의 희생의 결과이고, 이러한 가치의 참된 실현은 한 국가와 국민의 성숙도를 드러낸다. 다양한 가치관, 생각, 주장, 삶의 중요한 선택과 결정, 요구들이 조화를 이루고 사회 통합에 기여 하는 면도 있지만, 현실은 갈등과 충돌을 겪기도 한다.
요즘 5ㆍ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폄훼하는 일부 정치인들의 망언은 국민적 분노와 실망감을 안겨줬다. 이제 곧 ‘낙태죄 폐지에 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앞두고 있다. 교회는 낙태를 고민하고 경험한 여성들의 현실에 함께 아파하며, 우리 모두가 생명을 지키고, 생명을 살리는 길로 함께 나아가기를 희망한다. 무엇보다 남성들의 생명에 대한 책임감이 깊어지고, 여성들이 차별과 편견 없이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는 법과 제도, 생명존중 문화가 확산되기를 기도한다.
생명 출산에 대한 자기 결정권의 주장은 모든 권리에 우선하는 천부적 기본권인 생명권에 우선할 수 없다는 것이 교회의 입장이다. 우리 각자 자문해 본다. 진리가 나를 자유롭게 하는가? 자유가 나를 진리로 이끄는가? 생명이 우선하는가? 생명보다 행복한 삶이 우선하는가? 진리는 시대와 문화에 따라서 상대적인가? 아니면 종교의 차이를 넘어 보편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진리는 여전히 존재하지 않는가?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1347-1380)는 진리에 대하여 “하느님을 아는 것”과 “나 자신을 아는 것”이라고 했다. 하느님을 깊이 알면 나 자신을 알게 되고, 나 자신을 깊이 알면 하느님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진리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인격적인 만남과 관계 속에서 얻어지는 것이라는 말씀이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안식일 법을 어기면서까지 38년간 앓아 온 사람을 고쳐주셨다. 예수님은 병자를 고쳐주시며 당시 사람들이 생각했던 율법을 폐지하려고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는 것’(마태 5, 17)임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법이 둘이 아니라, 하나임을 명확히 하셨다. 예수님은 율법의 규정과 틀에 얽매이지 않고 진리 안에 자유로운 분이셨다. 그리고 우리에게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해 줄 것”(요한 8, 32)이라 말씀하셨다.
자유는 그 누구의 강제나 구속이 없는 상태에서의 선택과 결정의 ‘행위의 측면’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의 삶의 자리에서 ‘선을 향한 자신의 원초적인 정향성을 추구하고 실현하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참된 자유가 아니겠는가. 이 세상이 부러워하는 명예와 권력, 엄청난 지식과 부를 소유했다 하더라도 자유롭지 않을 수 있다. 반면 군부 독재 정권에 저항하며 민주화를 위해 감옥에서도 진정 자유로웠던 분들, 경제적인 어려움과 육체적인 질병과 장애를 딛고 묵묵히 성가정을 이루며 살아가는 분들이 오히려 더 자유로울 수 있다.
예수님과 한국 천주교회의 신앙의 순교자들,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생명을 바친 독립 유공자분들, 그분들은 고문과 협박, 고통과 시련 속에서도 자유로우셨다. 삶과 신앙도 마찬가지겠다. 어렵고 힘겨운 일들을 접하고, 하느님이 아니 계신 것 같은 절망 속에서도 작은 희망의 빛을 간직하며 살아가는 분들! 그분들이 진정‘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이요, 자신을 녹여 세상의 부패를 방지하고 삶을 맛깔나게 하는 소금이 아니겠는가.
유주성 천주교 수원교구 해외 선교 실장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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