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엉뚱한 사업을 ‘性認知 예산’으로 분류 / 경기도 행정의 신뢰와 직결되는 문제다

성인지예산제도는 꽤 된 개념이다. 예산의 편성ㆍ집행 과정에 남녀 차별을 없애기 위한 제도다. 예산이 여성과 남성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고, 이를 반영하도록 한다. 궁극의 목표는 예산 집행에 있어서의 양성 평등 실현이다. 1980년 호주에서 시작됐다. 1995년에는 ‘베이징 세계여성 회의’가 행동강령으로 채택했다. 우리도 2006년 국회에서 법제화했다. 2008년에는 예산안 작성지침도 발표됐다. 벌써 10년 된 행정의 일반 원칙이다.

경기도가 최근 관련 예산 편성을 공개했다. ‘성인지 예산 편성 내역’으로 정리된다. 2019년 대상 사업이 모두 200개다. 여기에 들어갈 예산은 3조4천39억원이다. 지난해와 비교해 사업은 5개 늘었고, 예산은 7천779억원 늘었다. 수치로만 보면 대단히 양호한 편이다. 성인지 예산에 대한 기관의 인식은 아직도 미미하다. 중앙부처의 성인지 예산은 올해 되레 줄었다. 지방정부의 관심은 더 형편없다. 경기도 예산이 서울시 다음으로 크다.

문제는 사업 내용이다. 본보가 들여다봤더니 이해 안 되는 대목이 한둘 아니다. ‘경기도 지역 화폐 운영 및 지원 사업’이 포함됐다. 구체적 사업 목표로 ‘지역 화폐 유관기관 등 간담회 3회 개최’가 있다. 지역 화폐제도는 이재명 지사의 핵심 공약이다. 성남시장 시절 큰 호응을 얻었던 프로그램이다. 많은 도민이 기대하고 있다. 그런데 이 지역 화폐 제도가 왜 성인지 예산으로 분류돼 있는지는 납득이 안 간다. 성(性)과 무관한 사업이다.

여러 건이 이렇듯 엉뚱하다. ‘개발제한구역 주민지원사업’이란 것도 해당 예산으로 분류돼 있다. 노후 주택 개량하고 LPG 소형저장탱크 지원하는 사업이다. ‘중학생 교복 지원 사업’ ‘친환경 등 우수농산물 학교급식지원 사업’ 등도 포함돼 있다. 살폈듯이 ‘성 평등 실현을 위한 예산 편성ㆍ집행’이 성인지 예산 제도의 목적이다. 노후 주택 개량, LPG 저장탱크 교체, 교복 지원, 친환경 농수산물 지원이 성 평등과 관련 있나. 우겨넣기 같다.

보아 넘길 수도 있는 문제다. 예산서(預算書) 내 편의적 분류일 뿐이다. 도민 생활에 미치는 영향도 없다. 하지만, 대외적으로 공표될 땐 달라진다. 많은 여성 단체가 성인지 예산 편성을 주목한다. 그 규모를 단순 비교해 각급 기관의 여성인권 인식을 평가한다. 경기도의 성인지 예산도 그런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었다. 그런데 그 내용들이 성 평등과 무관했다면 어찌 되겠나. 행정의 신뢰와 직결되지 않겠나. 바로 잡아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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