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맞은 외손녀 황은주 여사 “어려움 속 광복 희망”
외할아버지 정신·사상 배워… ‘독립유공자 후손’ 자부심
이영수 애국지사 “광복군 활동 기억 생생, 지속 관심을”
“일제의 치밀한 감시와 압박 속에서 어려운 생활을 이어가면서도 온 가족이 광복(光復)의 희망을 놓지 않았던 것은 외할아버지인 안중근 의사의 정신을 본받고자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2019년 기해년(己亥年)은 지난 1919년 3월1일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저항하고자 온 민족이 한반도를 태극기로 물들였던 ‘3ㆍ1운동’ 100주년의 해다. 더불어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지 11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3ㆍ1 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수원에 있는 보훈원에 거주 중인 안중근 의사의 외손녀 황은주 여사(91)를 만났다. 자녀와 미국에서 거주하고 있던 황 여사는 고국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어 국내로 돌아와 지난 2017년 6월부터는 보훈원에서 거주하고 있다. 황 여사는 고령임에도 비교적 양호한 건강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독립유공자 후손이라는 것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잃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일본은 안 의사의 딸과 사위라는 이유만으로 우리 부모님을 일본인 마을로 이주시켜 감시했고, 이 때문에 나는 부모님과 생이별해 외할머니 손에 자라야 했다”며 “외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지만, 외할머니의 보살핌 속에 자라면서 늘 외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자랐고 외할아버지의 정신과 사상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황 여사는 본인의 어린 시절을 ‘고난의 연속’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녀는 “일본은 부모님을 강제로 일본인 거주지역에 감금시킨 것뿐 아니라 본가에도 수시로 일본 순사를 기습적으로 파견하는 등 감시와 압박을 지속적으로 이어갔다”며 “가장 슬픈 기억은 1945년 8월15일에 우리나라가 독립했는데, 같은 해 12월3일 아버지가 우리 동포에게 암살을 당하면서 ‘대한 독립’을 누리지 못하고 떠나신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외할아버지인 안중근 의사도 빛을 되찾은 조국을 바라보면서 미소를 짓고 계실 것”이라며 “앞으로도 200주년, 300주년 3ㆍ1 운동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이어지길 소망한다”고 전했다.
1924년 경북 고령 출생으로 20세에 광복군 제3지대로 입대, 군자금 전달과 학도병 귀순공작 등의 임무를 수행했던 이영수 애국지사(95) 역시 현재 보훈원에 거주 중이다.
보훈원에서 만난 그는 3ㆍ1 운동 100주년을 맞은 올해는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며 벅찬 감동을 내비쳤다.
이 애국지사는 “광복군의 주요 활동지역이 만주인데 당시 만주는 곳곳에 수수가 사람 키만큼 자라 몸을 숨기기에 적합했다. 일본군에 기습 공격을 가하고자 수수밭에 몸을 숨긴 채 기약 없는 기다림을 이어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군자금 전달 등의 임무를 수행하고자 지역을 이동할 때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도랑이나 산으로만 이동, 평탄한 길을 걸어본 적이 없었다”고 당시 활동을 회상했다.
그는 이어 “선대 독립유공자 분들은 먼저 떠나셨고 남은 독립유공자들도 고령화 탓에 건강이 안 좋은데 이렇게 3ㆍ1 운동 100주년의 해를 건강하게 맞을 수 있게 돼 감사할 따름”이라며 “우리나라가 가장 어려움을 겪던 시절, 한반도의 빛을 되찾고자 목숨을 걸고 투쟁했던 독립유공자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채태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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