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김씨 세도에 숨죽이고 살던 대원군은 집권하자마자 쇄국정책과 더불어 몇 가지 적폐 청산을 내걸었다. 서원철폐는 물론 양반들의 허세를 상징하던 갓의 크기를 줄이고 담뱃대로 그 길이를 반으로 줄이도록 한 것이다.
특히 그 무렵 담뱃대의 길이는 신분의 척도이기도 했다. 상민들은 손바닥 크기를 넘지 못했으며 양반들은 한 자, 또는 두 자까지도 가능했다. 세도가들은 담뱃대와 담배에 불을 붙이는 도구를 들고 다니는 하인을 두기도 했는데 이들은 담배에 불을 붙여 두 손으로 공손히 상전에게 바치는 게 임무였다.
대원군은 이처럼 양반 행세의 상징물에 손을 댄 것은 파락호 시절 안동 김씨 세도 하에서의 적폐를 뼈아프게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그것은 사회개혁을 위해 한걸음 나아간 것이기도 하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주 장장 66시간의 열차 여행 끝에 트럼프 미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그러나 아쉽게도 긴 시간 열차로 이동하면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선전효과는 가져왔으나 회담 실패의 쓴맛을 삼켜야 했고, 또 그렇게 긴 여행 끝에 빈손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비록 실패한 북미회담이지만 핵시설 같은 주제와는 별도로 ‘김정은 위원장의 담배 재떨이’ 이야기가 계속 화제에 오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김정은 위원장은 베트남으로 가는 도중 중국 난닝역에서 잠시 열차를 멈추게 하고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우며 휴식을 취했다. 그런데 이때 그의 여동생 김여정이 재떨이를 들고 있다가 김정은 위원장의 담배꽁초를 받아 끈 것.
이것을 두고 세계 언론에서는 그의 절대적 권력과 북학의 가부장적 폐쇄사회를 말하기도 하고 혹시 그 꽁초가 미국이나 서방국가의 정보기관에 넘겨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등 화제가 되고 있다. 물론 김 위원장의 흡연은 이번만이 아니라 종종 화제를 일으키고 있다.
이른바 ‘현장지도’를 한다고 메기 양어장이나 생산 공장을 방문할 때도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북한 매체를 통해서 여과 없이 보도되는 것이다.
특이한 것은 북한에서도 금연운동이 벌어져 TV 등에서 흡연의 해로움에 대해 캠페인을 벌이곤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그런 금연 캠페인은 ‘나하고는 상관없고 너희들이나 해라’는 식이다. 담배뿐 아니라 김정은 위원장이 유치원을 방문했을 때도 신을 벗지 않고 그대로 실내에 들어가는 모습이 우리로서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바로 이런 지도자의 모습이 하노이에서의 북미 정상 회담 실패 원인이 되지는 않았을까? ‘모든 인민위에 높이 있는 권력자’ ‘가부장적 권력자’에게는 직언(直言)이라든지 다양한 소통이 없고 오직 경직된 일방통행만 있기 때문에 회담장에서 뜻밖의 소용돌이에 부딪히면 힘을 잃는다. 심지어 북한 언론의 대표적인 노동신문이 하노이로 떠나는 김 위원장을 향해 회담의 전략을 논하기보다는 “온 나라 인민의 마음과 마음들이 우리 원수님께로, 원수님께서 계시는 먼 이국땅으로 끝없이 달리고 있다…”라고 한 것은 김여정이 재떨이를 들고 김 위원장 옆에 서있는 것과 다름이 없는 것 아닐까?
이렇게 되면 ‘모든 것’으로부터 ‘모든 것’이 한 사람을 떠받치고 집중시키다 보면 결국 그 자신도 불행해질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트럼프 앞에서 ‘우리는 1분도 중요하다’고 했는데 그렇게 절박한 상황이라면 아무 곳에서 담배를 피워도 되고, 그러면 재떨이는 들고 옆에 서 있어야 하는 통치 스타일부터 바꿔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거기서 답이 나올 것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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