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아침] 경제활성화에 역행하는 상법 개정안

“집중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선출” 등의 내용을 담은 상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중이다.

집중투표제는 주식 1주에 대해 선임할 이사의 수와 동수의 의결권을 부여하고 각 주주가 그 의결권을 1인에게 모두(집중적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예컨대 5명의 이사를 선임한다면 1주당 5개의 의결권이 주어지는 것이다. 소액주주들이 합심하여 자신이 가진 모든 의결권을 1인에게 투표하면 그 1인이 이사로 선임될 가능성이 높다.

감사위원 분리선출 제도는 감사위원 이사를 일반이사와 분리해 선임하되 감사위원 선임시 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것이다. 법무부는 이같은 제도를 통해 소액주주의 권한을 강화하고, 감사업무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한편 대주주의 전횡을 방지해 총수일가 등이 경영권을 남용하는 사례를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입법취지에는 공감한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있다.

먼저, 집중투표제는 소액주주의 보호를 위한 측면도 있는 반면 이사 선임을 위한 주주총회가 이해집단의 각축장이 되고, 이사회는 각각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대리하는 집단의 조합으로 변질돼 제 기능을 못하게 될 우려가 있다. 즉, 이사회 구성원의 이질성으로 인하여 신속하여야 할 회사경영의 원활을 해치는 문제점이 발생한다. 겉으로는 소액주주를 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투기자본과 같은 금융자본을 위한 제도가 될 수 있다. 이를 의무적으로 강제하여 기업경영을 위축시킬 필요는 없다. 실제로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는 선진국은 거의 없다.

감사위원 분리선임은 투기자본의 공격에 악용될 우려가 크다. 이사 선임과 분리해 감사를 별도로 선임하고, 소액주주들이 집중투표를 하게 되면 헤지펀드 등 특정 세력이 원하는 감사를 이사회에 쉽게 진출시킬 수 있다. 감사는 대표이사를 포함한 모든 이사들을 감독할 수 있고, 회사의 거의 모든 자료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헤지펀드나 적대적 세력들도 회사에 그들의 대리인을 감사(위원)로 진출시켜 회사의 모든 고급정보를 취득할 수 있다. 외국계 헤지펀드가 위 제도를 악용해 경영진에게 자산매각, 배당률 상향조정 등 온갖 무리한 요구를 일삼다 회사가 망가지면 철수를 해도 속수무책이다. 상법 개정안의 시행은 투기펀드들에게 회사의 곡간을 내어주는 셈이다.

최근 미국계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이 현대자동차와 현대모비스에게 거액배당을 요구하고 사외이사 후보도 추천하는 등 경영압박을 본격화하고 있다. 엘리엇의 사외이사 대거 추천은 상법 개정안의 위험성을 알리는 경고임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상법 개정안이 그대로 국회에서 통과된다면 기업들은 투자와 고용확대에 쓸 재원과 시간을 경영권 방어에 사용하게 될 것이다.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이라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득보다 실이 큰 상법 개정안이다.

다시 한 번 지혜를 모아서 공정경제와 불투명한 기업지배 구조 개선의 입법목적을 이루면서도 국내 기업들이 안심하고 경영에 전념해 경제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해야 할 것이다.

이현철 변호사·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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