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현화중의 재난대응훈련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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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저녁 강원도 고성, 속초에 초대형 산불이 일어났다. 불은 건조한 대기 상태에서 태풍급 강풍을 타고 순식간에 번져 산림을 태우고 주변 민가와 건물들을 집어 삼켰다. 이 지역에 주민대피령까지 내려졌다.

불이 번지기 시작할 때, 고성군의 K리조트 지하 1층에선 수학여행을 온 평택 현화중학교 2학년 학생 199명이 레크리에이션 시간을 갖고 있었다. 저녁 7시55분께 학생부장이 화재발생 긴급재난문자를 확인했고, 교사들은 인근에서 발생한 산불이 리조트 쪽으로 달려드는 기세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해 긴급 조치를 취했다.

“여러분! 지금은 실제 상황이다. 선생님과 안전요원들이 안내 하는대로 따라주길 바란다”

교사들의 인솔에 따라 학생들은 3분여 만에 버스 7대에 뛰어올랐다. 학생들을 태운 버스는 리조트에서 10㎞가량 떨어진 숙소 쪽으로 대피하려 했지만, 일대가 이미 불이 번진 상황이어서 평택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차도가 불길을 피하려는 차량들로 뒤엉켜 간신히 시내를 빠져나왔다. 하지만 안도의 한숨도 잠시, 버스 1대가 엔진 쪽에서 불꽃이 튀고 연기가 났다. 학생 29명과 교사 1명, 안전요원 3명이 탄 버스였다. 교사와 안전요원은 학생들을 탈출시키려 했지만, 불 때문에 버스 자동문이 열리지 않았다. 운전기사는 침착하게 수동으로 문을 열었고, 버스 안 사람들이 곧바로 튀어나왔다. 모두가 안전하게 탈출한 뒤 버스는 거센 불길에 휩싸였다. 악몽같은 순간이었고, 모두 가슴을 쓸어내렸다. 학생들은 6대의 버스에 나눠타고 5일 새벽 무사히 평택의 학교로 복귀했다. 버스에 불과 연기가 나자 겁에 질린 학생들이 충격을 받고 울기는 했지만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현화중학교는 수학여행 출발에 앞서 재난대응훈련을 했다. 이 훈련이 자칫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었던 위급한 상황에서 큰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 인솔교사와 안전요원, 버스기사의 신속하고 침착한 대응도 훌륭했고, 학생들도 잘 따라줬다. 학생과 교사가 평상시 훈련을 하지 않았다면 200여명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현화중 박대복 교장은 수학여행에 담임 외에 한명의 교사를 추가 배치해 이 또한 위기대응에 도움이 컸다.

평상시 재난대응훈련이 비상상황에서 얼마나 큰 실효성이 있는지 현화중학교가 보여줬다. 실제 해보지 않으면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우왕좌왕, 갈팡질팡 하며 골든타임을 놓치게 된다. 때문에 재난대응 안전훈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회 구성원 전체가 안전의식을 갖고 지속적ㆍ반복적으로 안전훈련을 해야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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