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출산 자유 확대” vs “태아 생명권 부정”

헌재,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에 시민·사회·종교단체 엇갈린 반응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진 11일 오후 서울 헌법재판소 앞에서 여성들이 미소지으며 얼싸안고 있다. 연합뉴스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진 11일 오후 서울 헌법재판소 앞에서 여성들이 미소지으며 얼싸안고 있다. 연합뉴스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가운데 시민들과 사회ㆍ종교단체 등은 서로 간 찬반 의견을 고수하며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11일 오후 헌법재판소는 낙태죄의 즉각적인 무효화 시 사회적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오는 2020년 12월31일까지 낙태죄 관련 법 조항을 개정하라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 같은 헌재의 결론에 대해 시민들은 엇갈린 평가를 내놨다. 이날 수원에서 만난 B씨(23ㆍ여)는 “그동안 낙태죄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고 있었다”며 “이번 위헌 결정으로 억압됐던 여성의 임신ㆍ출산 자유가 확대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환영했다. 파주에 거주 중인 C씨(29) 역시 “태아의 생명권도 중요하지만, 원치 않는 임신으로 출산하게 되는 여성의 입장도 고려해야 한다”며 “낙태죄가 있든 없든 어차피 낙태를 하려는 사람은 불법으로라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D씨(47)는 “현재도 특수한 경우에 낙태를 허용해주는 예외가 있는 것으로 아는데 굳이 낙태죄 폐지까지 해야 하는지 의문”이라며 “태아도 엄연한 하나의 생명인데 일방적으로 잔인하게 생명을 앗아가는 것은 인권적인 차원에서 맞지 않는 것 같다”고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낙태죄폐지반대전국민행동 단체 회원들이 11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합헌을 주장하는 내용의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낙태죄폐지반대전국민행동 단체 회원들이 11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합헌을 주장하는 내용의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사회ㆍ종교단체 등도 서로 다른 의견의 성명을 발표하며 헌재의 결정에 호응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과 민주노총, 인권운동사랑방 등 23개 단체가 모인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은 “이번 헌재의 결정은 이 땅의 모든 여성을 위한 것”이라며 “경제개발과 인구 관리 목적에 따라 여성의 몸을 통제하고 생명을 선별,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해온 치욕스러운 역사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환영의 뜻을 밝혔다.

그러나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이번 결정은 수정되는 시점부터 존엄한 인간이며 자신을 방어할 능력이 없는 존재인 태아의 기본 생명권을 부정하는 것”이라며 “낙태는 태중의 무고한 생명을 직접 죽이는 죄이며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행위라는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에는 변함이 없다”고 반발했다. 개신교계인 한국교회총연합도 “인류의 대를 이어가며 보존하는 것은 국가와 사회를 지키는 유일한 방식이자 하나님이 정한 법칙”이라며 “이번 결정은 인간의 생태적 법칙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추정 지난해 국내 낙태 건수는 약 5만 건 수준이며, 2017년 기준 합법낙태(모체 건강을 해칠 우려 있는 경우·강간에 의한 임신·혈족 간 임신) 건수는 3천700여 건으로 집계됐다.

채태병기자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