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학술심포지엄, "인천이 한성임시정부의 태동지" 주장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근간이 됐던 한성임시정부의 태동지가 인천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인천시 역사자료관 시사편찬위원회는 23일 인천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에서 ‘인천의 3·1운동 그리고 임시정부 수립의 발자취’라는 주제로 학술심포지엄을 열었다고 밝혔다.

이날 심포지엄에서 양윤모 인천역사문화연구소 연구위원은 1919년 4월 2일 인천 만국공원(현재 자유공원)에서 열린 13도 대표자대회를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 연구위원은 “만국공원에서 개최된 13도 대표자대회는 한성 임시정부의 조직을 결정하고, 파리강화회의 대표 파견 문제를 결정한 회의”라며 “이와 함께 국민대회를 열고 정부를 수립하겠다는 것을 결정한 회의”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독립운동가 이규갑의 회고록에 따르면 이날 회의에는 홍진, 권혁채 등 18~19명이 참석했다”며 “또한, 회의에서 결정한 내용을 토대로 4월 23일 임시정부를 선포하고 집회와 시위를 연다는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특히 양 연구위원은 “인천은 지리적 특성(바다와 연결)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연계, 다양한 독립운동이 펼쳐진 지역”이라며 “인천이 개항 이후 일본제국주의 세력이 무척이나 강했던 점을 고려하면 인천의 3·1운동과 13도 대표자 대회 등은 큰 의미가 있다”고 했다.

이희환 경인교대 기전문화연구소 연구위원은 3·1운동 이후 인천에서는 청년운동, 노동운동 등 다양한 사회운동이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이 연구위원은 “3·1운동 이후 인배회(인천 배재고보 출신 모임), 제물포 청년회, 인천무산청년동맹, 인천화평청년단 등 여러 청년단체가 연이어 결성됐고 강화와 옹진에서도 독자적인 청년운동 단체가 나타났다”고 했다.

이어 “다른 지역보다 노동자가 많았던 특성 때문에 인천에서도 다양한 노동운동이 벌여졌다”며 “1920년 6월 25일에는 조선노동공제회 인천지회가 결성됐고, 1923년에는 소성노동회가 발족, 1924년에는 인천노동총동맹회로 발전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회의에서는 강옥엽 인천시사편찬위원회 전문위원이 사회를 맡고, 김점숙 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부교수와 양윤모·이희환 연구위원이 주제발표를 했다.

이후 임학성 인하대 사학과 교수의 사회로, 추교찬 인하대박물관 학예사, 강덕우 인천 개항장연구소 대표, 이현주 국가보훈처 연구관, 이원규 소설가의 토론 순으로 진행됐다.

이승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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