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불부터 끄자

이호준 사회부 차장 hojun@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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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오후 6시께 연천군 장남면 고랑포리 DMZ 내 북한지역 임야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 불은 DMZ 내 450㏊에 달하는 산림을 태우고서 약 21시간이 지난 23일 오후 3시께야 진압됐다.

이번 화재를 빠르게 진압하지 못한 것은 DMZ의 경우 UN군사령부의 관할 구역인 탓에 화재가 발생한다 해도 비행 승인을 받지 않으면 소방헬기가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산림청은 화재 발생 후 12시간가량이 지난 23일 오전 6시께가 돼서야 UN군사령부의 승인을 얻어 헬기를 현장에 투입할 수 있었다. 그 사이 인근 주민들은 DMZ 내 지뢰가 화재로 인해 폭발하면서 발생하는 폭발음을 들으며 두려움에 떨어야 했고, 지자체와 소방당국, 군 당국은 DMZ가 불타는 것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분단 이후 민간인의 출입이 전면 통제된 탓에 각종 멸종 위기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는 곳. 한반도의 ‘생태계 보고’로 불리는 DMZ가 화재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매년 10여 건의 화재가 DMZ 내에서 발생해 수백 ㏊가 소실되고 있지만 화재 발생 시 신속하게 소방헬기를 투입할 수도 없고, 소방헬기가 투입되더라도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지역으로 이동할 수 없어 북한지역 화재에 대해서는 손도 대지 못한다. 불길이 북한지역을 넘어 남측으로 내려와야지 비로소 진압에 나설 수 있다.

환경단체들이 DMZ 화재 관련해서는 정치적 관점이 아닌 안전ㆍ재난 분야로 접근해 남북이 신속히 소통할 수 있는 ‘핫라인’을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하는 이유다.

최근 한반도에는 그 어느 때보다 남북 화해무드가 조성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정부는 분단 이후 단 한 번도 민간에 개방되지 않았던 DMZ를 개방, ‘DMZ 평화둘레길’ 조성계획을 발표했다. 경기도 역시 DMZ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켜 자연생태환경을 보호하겠다는 방침이다.

둘레길을 만들고,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다 하더라도 불타 사라지면 그만 아닌가. 다른 그 어떠한 것보다 DMZ 화재 진압을 위한 남북 핫라인 구축이 시급하다. 급한 ‘불’부터 끄자.

이호준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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