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日 ‘레이와 시대’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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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히토 일왕이 30일 물러나고 나루히토 왕세자가 5월 1일 즉위한다. 이에 따라 일본은 30년간 계속된 ‘헤이세이’(平成ㆍ현재 연호) 시대가 저물고 ‘레이와’(令和)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일본에선 한 일왕의 재위기를 규정하는 연호(年號)를 서기 연도와 함께 생활 속에서 광범위하게 쓴다. 연호 사용은 세계에서 유일하다. 연호 제도 때문에 일왕이 바뀌는 것은 일본인들에게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가 바뀐다는 의미를 갖는다. 일본은 30일과 5월 1일 이틀에 걸쳐 ‘상징 덴노’(象天皇)로 불리는 일왕의 교대의식을 국가행사로 치른다. 1868년 메이지유신 이후 일왕의 즉위는 종신 재위로 인해 상중(喪中) 분위기와 축제 분위기가 겹쳤지만, 이번엔 아키히토 생전에 왕위를 물려주게 돼 축제 분위기다. 일본 역사에서 202년 만의 생전 퇴위다.

곧 물러나는 아키히토는 1933년생으로 올해 12월 만 86세가 된다. 그는 태평양전쟁 등 침략전쟁의 책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히로히토 왕(1901~1989)의 맏아들이다. 1989년 즉위했고 125대 왕이다. 아키히토는 1995년에 원자폭탄 피폭지인 나가사키와 히로시마를 찾았고 중국, 필리핀 등 일본이 저지른 전쟁으로 피해를 본 나라를 방문했다.

그는 전쟁에 대한 ‘반성’과 한국과의 ‘인연’을 거론한 적이 있다. 2001년에 “내 개인으로서는 간무 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續日本記)에 쓰여 있는데 대해 한국과의 연(緣)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2005년에는 사이판의 한국인 전몰자 위령지인 ‘한국평화기념탑’에 참배했다. 2012년에는 ‘왕비와 함께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한 것으로 일본 매체가 보도한 바 있다. 성사되지는 않았다.

지난해 8월 15일 일본의 2차대전 패전일에 열린 희생자 추도식에서 아키히토 왕은 “과거를 돌이켜보며 깊은 반성”이라는 표현을 썼다. 지난해 85세 생일 기자회견에서는 “헤이세이가 전쟁이 없는 시대로 끝나게 된 것에 안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직접 사과 등 파격적 수준의 과거사 관련 반성 및 사과는 상당히 미흡했다.

새롭게 왕위를 이어받게 될 나루히토 왕세자는 1960년생이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태어난 ‘전후세대’로 그가 어떤 행보를 보여줄지 주목된다. 재임 중 전쟁이 없었던 부친의 연호 헤이세이(平成)의 ‘평(平)’을 자신의 연호 레이와(令和)의 ‘화(和)’로 완성해 나갈 것인가가 관건이다. 한 시대가 가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일본은 기대와 욕구가 꿈틀거린다. 지금, 우리는?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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