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홀로 야간 순찰을 하다 변을 당한 태안 화력발전소의 하청노동자 故김용균 청년. 비정규직이던 24살 청년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면서 대한민국은 다시 한 번 ‘안전 후진국’의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많은 변화가 시도됐다. 가장 큰 틀은 이른바 ‘김용균 법’으로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개정이다. 산업 현장의 안전규제를 대폭 강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최근 시행령 개정안이 입법예고되면서 법안이 공개됐다. 내년 1월부터 전면 시행된다.
그런데 이 산안법 개정안을 두고 경영계가 크게 2가지 문제를 제기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중대재해 발생 시 작업중지 명령을 내리는 구체적 기준이 마련되지 않아 감독관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작업중지가 지속될 것이란 우려와 작업중지 해체를 요청하려면 작업 근로자 과반수의 의견을 청취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어 자칫 노사 갈등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이다.
노동계는 노동계 나름대로 불만이다. 개정안의 도급 제한ㆍ승인 업종 범위가 너무 좁아서 별로 달라질 게 없는 법이라는 얘기다. 현 개정안대로라면 김용균 청년이 일했던 화력발전소도 포함되지 않는다. 원청의 안전 책임을 강화한 건설 기계 종류도 사고가 빈번한 지게차와 덤프트럭 등은 빠졌다.
지금 이 시간에도 각종 현장에서 발생하는 산업재해로 수많은 근로자가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당하고 있다. 현 정부는 지난 2017년부터 오는 2022년까지 매년 산업재해 사망자 수 절반 감축을 목표로 공격적인 산업재해 예방 대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사망자 수는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더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임서정 고용노동부 차관은 예고도 없이 지난달 말 고용노동부 경기지청을 찾아 유관기관, 현장 관계자와 머리를 맞대기도 했다.
“내년부터 산안법이 시행돼 사고가 났다 하면 며칠씩 공장을 세워야 할 판이네. 가뜩이나 제조업 경기가 바닥을 치는데 이제는 정말 공장 문을 닫아야 할 시기가 온 것 같아.”
우리 사회에 제2의 김용균은 다시는 나와서는 안 된다. 또 30여 년간 건실하게 제조업을 일궈온 중소기업 K 대표의 한숨 섞인 말도 흘려 들어서는 안 된다. 노동계와 경영계 모두 웃을 수 있는 산안법 제정이 이토록 어렵단 말인가.
권혁준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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