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새벽 배송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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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 M사의 새벽 배송을 가끔 이용한다. 밤 11시 이전에 먹을거리를 주문하면 다음날 새벽에 빵과 우유, 샐러드, 과일 등 신선식품이 아파트 문 앞에 배달된다. 가격은 다소 비싼 듯하지만 상품 질이 괜찮아보여 믿고 구매한다. 사람 많은 곳에 가서 번잡하게 장을 보지 않아도 되니 편리하고 상품 만족도도 높은 편이다.

잠자기 전 주문하면 눈뜨기 전 문 앞까지 물건을 가져다주는 ‘새벽 배송’이 큰 인기다. M사는 밤 11시까지 주문하면 다음 날 아침 7시 전까지 집 앞으로 배송해주는 새벽 배송 서비스로 창업 이후 4년 동안 50배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새벽 배송을 등에 업은 이 회사의 가파른 성장세는 유통업계의 화두로 떠올랐고, 이후 경쟁업체들이 너나없이 새벽 배송에 뛰어들었다. 늦은 밤 온라인ㆍ모바일 쇼핑을 즐기는 ‘야코노미’족이 급격히 늘면서 샛별배송, 새벽식탁, 로켓프레시, 쓱배송 굿모닝 등 업체마다 새벽 배송 전쟁을 벌이고 있다.

소비자에게 편리하고 배송업체에는 블루오션으로 주목받는 새벽 배송의 이면엔 배송 기사들의 고충이 있다. 새벽 배송이 나온 뒤로 하루 ‘두 탕을 뛰는’ 배송 기사들이 많아졌다. 낮에 일하고, 밤에 또 일하는 기사들은 쪽잠을 자면서 길게는 하루 17시간씩 노동을 한다. 기사들은 피로 누적으로 자칫 사고가 나지 않을까 늘 걱정이다.

배송 기사들이 장시간 일하는 배경에는 ‘지입사(운송업체·주선사)’가 있다. 현행법상 본인이 배송 차량을 갖고 있어도 배송 업무를 하려면 ‘영업용 번호판’이 필요한데 이 번호판은 개인에겐 발급되지 않는다. 때문에 기사들은 영업용 번호판을 소유한 지입사에 3천만∼4천만 원을 내고 번호판을 빌려야 하고, 매달 지입료도 낸다. 새벽 배송 기사들은 대부분 개인사업자로 지입사와 계약을 맺고 배송 일을 하는 지입 기사다. 배송업체가 직영보다 지입 기사를 선호하는 이유는 비용 절감 때문으로 보인다.

배송 기사들은 하루 한탕만 뛰어서는 지입사 비용 지불 등 생계가 빠듯하다 보니 ‘투잡’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위험한 줄 알지만 먹고 살려면 밤낮없이 길게 일해야 한다고 말한다.

야간노동이 노동자의 건강을 해친다는 것은 연구를 통해 밝혀진 바 있다.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2007년 야간노동을 ‘인간의 생체리듬을 어지럽힐 수 있는 발암물질’로 규정했다. 장기간 야간에 일한 노동자는 암에 걸릴 개연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새벽 배송 업체들은 소비자 편의만 앞세우지 말고 이를 위해 투입되는 노동자들의 건강 문제도 고민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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