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단체장 재판 계류에 휘둘리는 행정 / 지방자치 30년이면 이제 달라져야

백군기 용인시장에게 벌금 90만원이 선고됐다. 선거 기간 전에 선거 사무실을 운영했다는 혐의였다. 재판부는 공직선거법 위반(유사기관의 설치 금지)에 대해서는 무죄를, 무상으로 제공받은 사무소 임차료(정치자금법 위반)에 대해서는 유죄를 선고했다. 판결 중 주목되는 부분이 있다. “시장 업무를 계속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 심히 부적절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시장직 박탈까지는 아니라는 취지다.

백 시장은 그동안 압수수색과 검찰소환을 거듭했다. 이를 지켜보는 지역 여론이 중형을 예상하는 방향으로 흘렀다. ‘내년(2019년) 4월까지만 시장’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이는 곧 행정 위축으로 나타났다. ‘광교산 난개발과의 전쟁’ 등 핵심 정책이 구심점을 잃었다. 본인, 공무원사회, 지역 정치권 등의 함께 혼돈에 빠진 결과다. ‘시장직 유지’라는 1심 판결이 나왔지만, 용인시 행정은 이미 10개월을 잃었다.

이재명 경기지사도 그렇다. 지난해 선거 이후 검찰 수사와 법원 재판이 계속됐다. 소환 조사와 압수수색이 거듭됐다. 각 진영의 성명전도 그치지 않았다. ‘특별한 신체 검증’을 받는 일까지 생겼다. 결과는 공소사실 4건 모두 무죄다. 이 지사의 ‘새로운 경기 프로젝트’는 큰 장애를 겪었다. 주변에서의 ‘도지사 흔들기’가 행정에 안긴 직격탄이다. 이 지사 본인의 문제가 아니다. 1천300만 도민의 10개월이 날아갔다.

경기 남부에서만 단체장 5명이 피고인 신분이다. 엄태준 이천시장은 지난 1월 벌금 80만원을 선고받았고, 검찰이 항소를 포기해 형이 확정됐다. 우석제 안성시장은 재산신고 때 채무를 누락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았다. 불법으로 명함을 돌린 혐의로 기소된 김상돈 의왕시장은 1심에서 벌금 100만원을 선고받았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은수미 성남시장의 재판은 진행 중이다.

물론 가장 큰 귀책사유는 당사자들에 있다. 기소될 행위를 했다는 원죄(原罪)를 벗기 어렵다. 누구는 무죄, 누구는 신분 변화없는 형량을 받았다. 하지만, 이런 결과라 해도 누굴 탓하거나 원망할 입장은 못 된다. 우리도 재판 계류 단체장들의 입장을 두둔하려는 게 아니다. 1심 형량에 확정적 의미를 부여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근거 없는 잣대로 재판을 부풀리고 행정을 마비시키는 구태를 더는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구전 재판’이란 말이 있다. ‘입에서 입으로 이뤄지는 재판’이라는 뜻이다. 재판 외인들끼리 재단하고 결과를 뿌려댄다. 서로 자기에게 유리한 정황만을 확대해 만들어내는 허구다. 대개의 단체장 재판이 이런 ‘구전 재판’에 휘둘린다. 실제보다 악의적으로 부풀려지기 일쑤다. 이 ‘구전 재판’이 공무원 사회를 흔들고, 지역 사회를 어지럽게 한다. 종단엔 단체장의 행정을 마비시켜 시민에 피해를 안긴다.

30년 가까이 반복되는 악습이다. 지겨울 때도 되지 않았나. 다소 추상적일 수 있으나 관련 문화를 바꿀 필요가 있다. 재판은 판사만이 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구전 재판’은 또 다른 범죄가 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남은 각각의 항소심에서라도 이런 사회적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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