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고령군 고령읍은 ‘높을 고(高)’에 ‘신령 령(靈)’자를 쓴다. 발음만 보면 나이가 많다는 고령(高齡)과 같다. “지명 탓에 지역발전이 더딘 것 같다”는 주민 여론에 군은 2015년 고령읍을 ‘대가야읍’으로 바꿨다. 대가야읍은 고령군 일대가 고구려·백제·신라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대가야의 수도였다는 점을 강조한 이름이다. 경북 청송군은 부동면을 ‘주왕산면’으로 바꿨다. 부동(府東)면은 방위에 기초한 이름으로 1914년 일제시대 때부터 쓰였다. 군은 일제 잔재를 없애고, 지역 대표 관광지인 주왕산을 마을이름에 담아 개명했다.
지방자치단체의 동네 이름 바꾸기가 이어지고 있다. 일제시대때 지어진 별 의미없는 이름을 바꾸기도 하고, 어감이 부정적으로 들려 바꾸는 경우도 있다. 이름은 중요하다. 사람뿐 아니라 마을명, 도로명도 마찬가지다. 명칭이 의미를 결정하고, 이미지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명칭이 ‘수도권순환고속도로’로 바뀐다. 드디어 ‘서울외곽’이란 단어를 떼어내게 된 것이다. 서울외곽순환도로는 성남 판교 분기점에서 서울(송파 노원 강동구)과 인천(계양 부평 남동구), 경기(하남 구리 남양주 의정부 양주 고양 김포 부천 시흥 군포 안양 의왕 시흥 안산시) 등 수도권 20개 지역을 지나는 총길이 128㎞의 왕복 8차로 고속도로다. 경기 구간이 103.6㎞, 인천과 서울이 각각 12.5㎞, 11.9㎞다. 1기 신도시 건설에 따른 수도권 교통정체 해소를 목적으로 1988년 착공해 2007년 전 구간이 개통됐다.
경기ㆍ인천에서 서울외곽순환도로 명칭 개정의 목소리가 높았다. ‘서울외곽’이란 단어 자체가 서울 중심의 사고가 반영됐기 때문이다. 서울의 변두리라는 의식이 깔려있어 경기ㆍ인천 주민의 자존심에 흠집을 내는 이름이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수도권순환고속도로로 바꾸는 것을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다. “대한민국 지방정부들은 서로가 상하위 관계가 있을 수 없다. 경기도를 ‘서울외곽’이라 칭하는 것은 자치분권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낡은 관념”이라며 명칭 개정에 공을 들였다. 고속도로 이름을 바꾸기 위해선 해당 노선을 경유하는 모든 지자체장의 동의를 얻어 2곳 이상 지자체장이 공동 신청해야 한다. 경기도는 서울시와 실무협의회를 구성해 여러차례 회의를 가졌고, 많은 노력 끝에 서울시와 송파·노원·강동구, 인천시와 최종 합의했다. 도는 국토부에 명칭 개정을 공식 건의했다.
‘서울외곽’이 ‘수도권’으로 바뀌는 것은 단순히 도로이름만 달라지는 게 아니다. 경기도민ㆍ인천시민의 자존감을 살리는 일이요, 수도권 상생 협력의 상징이라는 면에서 의미가 크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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