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항공 작전서 활약
자택에 ‘유공자 명패’ 부착
“강한 軍, 안보에 만전” 당부
“대한민국에서 다시 전쟁이 발발한다면 비행기 조종은 힘들지언정, 총이라도 들고 전쟁 최전선으로 뛰어들겠습니다. 몸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전투비행장 경비라도 서면서 국토방위에 온 힘을 쏟아붓고 싶습니다.”
6ㆍ25전쟁 69주년을 앞둔 20일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 자택에서 만난 김두만 전 공군참모총장(93)의 첫 인상은 강렬했다. 93세라는 고령에 마른 체형이었지만 악수를 나누는 손에는 청년같은 힘이 서려 있었다. 인사를 건네는 얼굴은 미소를 띄고 있었지만 눈빛은 현역 군인 못지 않게 날카로워 그의 기개를 짐작할 수 있었다. 자택 곳곳에는 공군 전투기 모형과 현역 시절 사진이 즐비해 군인으로서의 강직한 분위기를 한껏 더했다.
김 전 총장은 “6ㆍ25전쟁 때 두려움 없이 적과 맞서 싸웠듯, 지금도 그 마음에 변함이 없다”고 담담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24세에 불과하던 6ㆍ25전쟁 당시 미 공군이 제공한 F-51D 머스탱 전투기로 공군 최초 100회 출력 기록을 달성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김 전 총장의 첫 전투는 6ㆍ25전쟁 발발 사흘째인 6월27일. 김 전 총장은 임진강 철교를 차단해 달라는 육군의 요청을 받고 출격했다. 당시 공군을 이끌던 베테랑 조종사들은 미 공군의 F-51 인수를 위해 일본에 있던터라 비행기를 한 번도 타보지 않은 김 전 총장(당시 중위)이 폭탄 10개를 장착하고 출격해야 했다. 구름이 많은 날씨, 처음 해보는 비행기 조종 등 악조건 속에서도 임무를 마치고 무사 귀환에 성공했다는 그는 “귀환 후에 탔던 비행기를 살펴보니 바닥이 온통 파편에 뚫려 있었고 조종석에 잿가루가 가득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임진강 철교 폭파 작전 이후로도 한국 공군 단독출격작전, 근접 항공지원작전, 서부전선 후방보급로 차단 작전 등 수많은 항공작전에 투입됐다. 김 전 총장은 수많은 출격 작전에서 세운 공을 인정받아 을지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을 받으며 공군의 살아있는 전설이 됐다. 정전 이후에는 제10전투비행단장, 공군작전사령관, 11대 공군참모총장을 역임하며 일평생을 공군과 함께 했다.
김 전 총장은 지금의 대한민국 안보태세에 대해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그는 “우리나라의 안보가 불안한 상황 속에서 군인 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이 안보태세에 만전을 기했으면 좋겠다”며 “군 역시 강한 군대로 남아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 이를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한편 경기동부보훈지청은 이날 김 전 총장의 자택에서 명패달아주기 시범 행사를 진행했다. 독립유공자 및 국가유공자 명패 사업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6월 현충일 추념사를 통해 국가유공자를 존경하는 마음을 이웃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 통일된 ‘국가유공자 명패’ 사업을 지시한 후 본격화됐다. 경기동부보훈지청은 하늘과 불꽃, 날개와 태극의 의미가 들어간 새로운 국가유공자 상징을 활용해 만들어진 명패를 유공자의 집에 부착, 유공자의 명예와 자긍심을 높이는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6월부터는 국가유공자, 특히 6.25 참전유공자를 중심으로 명패를 달고 있다.
용인=김승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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