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아침] 남녀평등 문제 해결

요사이 언론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이 성추행이나 성폭력으로 인한 갈등이다. 얼마 전 한 공무원이 요사이에는 남녀 직원끼리 모인 저녁 회식이 사라졌다고 투덜거린다. 성추행에 시달릴까봐 아예 회식 등의 자리를 없애 버려 사전 예방한다고 한다.

이런 성 갈등은 남녀 간의 불평등을 만든 종교나 사회적 제도에서 생기는 것이다. 종교적 관습으로 남성 우월주의가 생겨났다. 하지만 불교는 남녀 차별이 없다. 가톨릭에서는 수녀가 성당 주인이 될 수가 없으나 불교는 여자스님이 주지직을 수행할 수 있다. 그리고 각 나라의 문화적 차이점 때문에 성추행이라는 말이 나올 수 있다고 본다. 외국에서는 인사할 때 볼에 키스를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결례다.

종교가 생기기 이전에는 모계사회였다. 모계사회에서는 가정불화나 성추행, 성폭력, 남녀 간의 싸움, 고부 간의 갈등이 없었다.

석기 시대에는 아이들을 낳고 키우는 주체인 어머니가 중심이 돼서 어머니 쪽 혈통이 이어지는 사회를 모계 사회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모계 사회라고 해서 여성이 남성을 지배하지는 않았다. 누가 누구를 지배하는 게 아니라 살아가기 위해 서로 돕고 사는 사회였다.

현대에 남아 있는 모계 사회 중 중국 윈난성의 모소족이 유명하다. 그리고 그곳은 고부갈등, 성추행, 성폭행, 가정불화가 없다고 한다. 그들은 남성과 여성이 결혼해도 한집에 살지 않는다.

모소족에게는 남녀가 여자의 방에서 만나 사랑을 나누는 이성교제는 있어도, 부부가 돼 가정을 이루는 결혼제도는 없다. 자식의 아버지는 없고 엄마뿐이다. 남녀가 사랑하는 사이라 하더라도 상대방을 구속할 수 없는 것이다. 남녀관계는 밤이 되면 남자가 여자 집을 찾아 창문에 신호하는 것으로만 성립하는 것이다. 부계사회의 관념에서 보면 여러 여자와 관계를 해 남자에게는 모소족의 결혼제도가 참 편리할 것이라 생각될 수 있지만, 그렇지는 않다. 창문을 열어주고 아니고는 전적으로 여자가 주도권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한국도 삼국시대, 통일신라, 고려까지는 여성이 호주제도나 상속의 균등과 제사의 집행을 하는 제사장 등을 하였고, 최초의 여왕이 신라 선덕여왕이었고, 화랑제도의 원조인 원화제도 역시 여성이었다. 그러나 조선시대 이후 유교가 들어와 불교를 박해하면서부터 여성 차별이 시작됐다.

그리고 전 세계의 고대문화에서 보면 여성상이 많이 존재했다. 중국 우하랑 한민족 홍산문화 유적지에서는 5천 년 전의 여신 묘가 있다. 한국은 창조신 마고 여인이 있고, 외국에서도 발굴된 많은 여성상 등이 고대 여성들이 모계사회였다는 증거들이다.

그러면 이 시대에 남성과 여성의 위치는 어디까지 왔나. 그 답은 우리 스스로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부족하다면 사회나 언론의 의식구조 문제다. 또는 법률과 정부의 과잉대응일 것이다. 여성을 보호의 대상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남녀 평등한 주체의 대상으로 보아야 한다. 여성가족부라는 말 대신 가족청소년부라던가, 이런 피지배자로서의 여성 성차별법을 재정비하고, 글로벌 시대에 맞게 인사법도 개방하고, 여성을 약자로만 보는 남녀 성평등법 등을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선일스님 법명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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