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국적 ‘재외동포 비자’
중앙아시아 출신 ‘방문취업’
장기체류·노동권 보장 어려워
최근 재외동포법 시행령 개정으로 고려인 4세대가 동포로 인정받아 최소한의 국내 체류 자격(본보 7월17일자 1면)을 보장받게 됐지만 여전히 한국사회가 출신국에 따라 까다로운 조건과 절차를 제시하고 있어 또 다른 차별을 낳고 있다는 지적이다.
23일 법무부에 따르면 출입국 관리법 시행령은 외국국적 동포를 2종류로 구분해 재외동포(F-4) 비자와 방문취업(H-2) 비자를 부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법무부는 고려인 중 러시아 국적에 대해서만 지난 2010년부터 재외동포(F-4) 비자를 발급해주고, 중앙아시아(CIS) 국가 출신 고려인에 대해선 대학 졸업 등 일정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방문취업(H-2) 비자를 부여해왔다.
이에 따라 단기비자인 방문취업(H-2) 비자를 받은 고려인의 경우 3년에 한 번씩 본국과 한국을 왔다갔다 반복해야 한다. 이 때문에 정규직 취업이 어려운 것은 물론, 건강보험 문제도 발생하는 등 국내 장기 체류와 노동권 보장이 어려운 실정이라 사실상 ‘디아스포라(Diaspora·이산자·근거지를 잃고 유랑해온 사람들)’의 삶을 살고 있다. 게다가 고려인들이 방문취업(H-2)에서 재외동포(F-4) 비자를 받으려면 국내 기술자격증이나 2만 이하의 소도시에서 1년 이상 근무해야 하는데 한국어를 몰라 자격증 취득과 취업 또한 쉽지 않은 상황이다.
우즈베키스탄 출신 A씨는 “재외동포(F-4)를 받기 위해 대학 입학을 준비했다가 경제적 여건이 안 돼 소도시로 내려가 2년 정도 일 할 생각”이라며 “원래 취업 비자를 받으면 각 지역에서 매달 한 번씩 있는 한국어 교육을 받을 수 있는데, 인원도 많고 시간도 맞지 않아 언어 습득이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이 같은 고려인 동포 비자문제는 방문취업(H-2) 비자를 폐지하고 고려인 대상 재외동포(F-4) 비자의 나이·단순노무 제한 조항 삭제 등 해외동포법 시행령을 각국 동포 실정에 맞게 수정해 또다시 유랑민으로 떠돌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목소리 커지고 있다.
안산시고려인지원센터 ‘사단법인 너머’는 “고려인 4세 문제는 한시적 출국유예조치를 거쳐 재외동포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어느 정도 결실을 맺었지만, 이번에는 어느 나라 출신 고려인이냐 하는 또 다른 차별이 고려인 4세 문제를 다시 원점으로 돌려놓고 있다”며 “재외동포법 관련규정의 개정이 무색하게 기존 출입국 행정기준과 관행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많은 중앙아시아국가 출신 고려인 4세 이하 재외동포들은 여전히 재외동포(F-4) 비자를 취득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방문취업 체류자격(H-2)을 지닌 중앙아시아 출신 고려인 4세의 안정적 체류를 보장하고 사회통합프로그램을 통해 우리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밝혔다.
구재원ㆍ강현숙ㆍ설소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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