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비 시인 정초부의 삶과 문학 ‘월계마을 정초부’展 개막

노비 시인 정초부의 죽음을 슬퍼하며 여춘영이 쓴 오언절구 한시 '초부를 묻고 돌아노는 길에 읊다'. 여춘영의 후손인 서예가 여원구 선생이 쓴 글씨다.
노비 시인 정초부의 죽음을 슬퍼하며 여춘영이 쓴 오언절구 한시 '초부를 묻고 돌아노는 길에 읊다'. 여춘영의 후손인 서예가 여원구 선생이 쓴 글씨다.

양평군은 양평 출신 노비 시인 정초부의 문학과 일대기를 그린 <월계마을 정초부>전을 친환경농업박물관 미지홀에서 오는 9월15일까지 연다.

이번 전시는 2019 지역문화예술 플랫폼 육성사업의 하나로 기획되었으며, 양평의 역사적 인물인 노비 시인 정초부를 새롭게 조명해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정초부 (鄭樵夫 1714~1789)는 양평의 명문가인 함양 여씨 집안의 노비였다. 초부(樵夫)란 이름은 나무꾼이란 뜻이다. 제대로 된 이름조차 같지 못한 노비 신분이었지만 정초부는 추사 김정희가 그의 한시를 화제로 쓸 만큼 당대에는 뛰어난 시인으로 인정받았다.

이런 정초부에게 그보다 스무 살 어린 주인 여춘영(1734~1812)은 ‘어릴 때는 스승, 어른이 되어서도 친구로 지내며 시에서는 오로지 내 초부뿐이었지….’라며 초부의 재능을 아꼈다. 여춘영이 ‘초부의 시를 양반 사회에 퍼뜨리자 그의 명성이 서울에 가득하였다’라고 문헌은 전한다.

그러나 노비라는 신분은 재능있는 시인의 삶을 바꾸어 놓지는 못했다. 재능을 아낀 주인이 노비 문서를 불태워 그의 신분을 해방했지만 오히려 그것 때문에 민적조차 없어 구휼미를 받을 수 없는 곤궁에 빠졌다.

양평의 역사적 인물인 노비 시인 정초부의 삶과 문학을 다룬 '월계마을 정초부'전이 23일 친환경농업박물관에서 개막했다.
양평의 역사적 인물인 노비 시인 정초부의 삶과 문학을 다룬 '월계마을 정초부'전이 23일 친환경농업박물관에서 개막했다.

시인 정초부는 자신의 곤궁을 이렇게 노래했다.

‘산새는 진작부터 산 사람의 얼굴을 알고 있었지만/관아의 호적에는 아예 이 늙은이 이름이 빠졌구나/큰 창고에 쌓인 쌀 한 톨도 나눠 갖기 어려워/높은 다락에 오르니, 저녁밥 짓는 연기 피어오르네’

정초부가 죽자 주인인 여춘영은 ‘초부를 묻고 돌아오는 길에 읊다’란 시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저승에서도 나무하는가?/서리맞은 단풍잎들이 빈 물가에 쏟아진다/삼한 땅에 명문가 많으니/내세에는 그런 집에 나시오’

<월계마을 정초부>전은 300년 전 양평에서 노비의 신분으로 살 수밖에 없었던 특별한 시인 정초부의 삶과 문학, 그리고 신분을 초월한 우정을 나눴던 양반 여춘영의 이야기가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양평=장세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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