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수출 규제 이후 양국 간의 관계는 1966년 6월 22일의 한일 기본 조약으로 인한 관계 정상화 이후 최악의 사태를 맞이하고 있다. 물론 과거 한국 정부는 몇몇 굵직한 사건으로 인해 국교 단절의 비상 카드를 꺼낸 들려고 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의 사태는 그때와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결과적으로 일본 정부의 무역 규제가 한국에서는 보복으로 받아들여졌고, 화이트 리스트 배제로 인한 경제 침탈이 시작된 시점에 정부는 세계무역기구에 제소하는 등 나름대로 국제법과 국내법에 필요한 초강경의 대응 조치를 취해 가고 있다.

사건 이후 국내의 대표적 지상파 방송에서 막바지 일본 참의원 선거 유세 속에서 현 사태를 주시하는 그들의 속내를 살펴보았는데, 수출 규제를 정당하게 여기는 70% 이상 일본인들의 논리는 간단하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입장에서는 1965년 한일청구협정에서 약속한 청구권 포기를 어겨 더 이상 지금까지의 한국에 대한 우대조치를 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본의 강제징용에 대한 손해배상 판결을 내린 한국 대법원의 결정에 대한 명백한 보복성 발언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일본 정부의 입장에서는 ‘안보상’의 이유로 내려진 조치라고 하지만 그 이유가 타당하지 않다.

이와 함께 일본 내 여론은 현재 한국 정부가 북한과 사이좋게 지내고 중국 주도로 움직이는 데 대한 염려와 함께, 한국으로 수출된 것이 군사적으로 전용된다면 자기들 입장에서는 곤란하기 때문에 규제가 아니라 무역 관리를 제대로 하는 것으로 여기기도 하였다. 특히 여기에 한 몫 더하는 반한 감정을 부추기는 일본 정치인들의 서슴지 않은 언행과 무례함은 143년 전 강화도 조약 이후 조선에서 행했던 일본의 태도를 재현해 보는 것 같아 심히 불쾌할 정도이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것은 좌와 우의 문제도 아니고 당론으로 각을 세울 문제도 아니다. 1591년 3월 일본에 통신사로 다녀왔던 조선의 동ㆍ서인 관료들의 각기 다른 보고는 이듬해 임진년부터 시작된 7년 왜란을 초래했고, 병자년 막바지인 1636년 12월 2일에 시작된 호란으로 남한산성에서 항전하던 조선은 주화론과 주전론자로 나뉘어 갈팡질팡하다가 결국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의 수치를 당하며 전쟁발발 2개월이 되기도 전에 항복했던 역사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지금의 문제는 국가의 이익이 우선되고 국민의 힘이 하나 되어야 할 때이다. 국가가 비굴하면 국민이 비참해진다. 그러므로 국민을 움직이려고 여론을 호도해서도 안 되겠고, 국민을 이용하려고 정치를 내세워서도 안 되겠다.

국민의 자발적 참여가 관건이다. 7년의 임진왜란이 항복으로 끝나지 않은 것은 백성의 의로운 자발적 참여가 있었기 때문이고, 2개월의 병자호란이 항복으로 끝난 것은 백성의 참여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국민의 동의를 받아낼 수 없고, 자발적 참여를 요구할 수도 없겠지만 2016년 10월의 촛불혁명 때처럼 한 사람 한 사람 국민의 자발적 참여가 필요할 때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구약성서에 “한 사람이면 패하고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는데, 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전 4:12)고 했다. 이 나라를 지탱하고 끌어가는 힘은 좌우의 이념이나 당론으로 움직이는 정치가 아니라 국민이다. 정치가 기술이고 견제라면 국민은 힘이다. 국가 대 국가의 대립에서 국민의 협력은 절대적인 국가의 힘이 된다. 이후 정세의 추이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한 사람의 힘이라도 더 해 일본의 경제 침탈을 극복하는 저력을 보일 때이다.

강종권 구세군사관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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