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5월23일, 서울 미문화원이 점거됐다. 남녀 대학생 73명의 기습이었다. 이후 나흘간 농성을 계속했다. ‘광주사태 책임지고 미국은 공개사과하라’고 요구했다. 이른바 ‘서울 미문화원 점거 농성 사건’이다. 주동자 20명이 구속기소됐다. 서울대 물리대 학생이던 ‘이 변호사’도 그 중 하나다. 어느덧 35년의 세월이 지났다. 출소 후 어렵던 시절도 보냈다. 복학ㆍ졸업 후 학원 강사도 했다. 진로를 바꿔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지금은 평범하게 살아가는 50대 변호사다. ▶그에게 끝나지 않은 벌(罰)이 있다. ‘미국 입국 불가’란 형벌이다. 미국이 내렸는데, 만기(滿期)가 없다. 아직도 미국을 갈 수 없다. 그 시절 동료들이 다 그렇다. ‘풀어야 한다’는 여론도 많았다. 미국은 입장 불가만을 반복했다. 간접적으로 전해진 전제 조건이 있다. ‘오고 싶으면 유감 표명 정도라도 하라’. 35년간 가해진 차별이다. 살아가며 불편한 게 한둘 아니다. 다 같이 모일 때면 논쟁이 벌어진다. ‘유감 정도는 해도 되지 않나’. 하지만, 결론이 늘 똑같다. “술 한잔 들어가면 ‘그냥 이대로 살자’로 끝나버려”(이 변호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방미가 제한됐다. 미국 정부가 밝혔다. ESTA(전자여행허가제) 적용 대상에서 제외했다. 관광ㆍ비즈니스 목적으로 최대 90일간 비자 없이 미국을 방문할 수 있는 제도다. 앞으로는 매번 미국 대사관을 찾아가야 한다. 영어 인터뷰를 하고 비자를 받아야 한다. 이 부회장과 최 회장의 방북이 원인이다. 지난해 9월 대통령 특별 수행단으로 갔었다. ▶2019년 6월 30일 오후 3시 45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에 갔다.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 땅을 밟았다. 스스로 그 순간을 세계에 내놓고 자랑했다. 그래놓고 우리 대통령 따라간 우리 기업인엔 제재를 가했다. 따지고 보면 어제오늘 일도 아니다. 지겹도록 봐온 미국 제일주의 오만이다. 요 며칠도 그렇다. 우리가 일본 경제 보복에 허덕이고 있다. 여기에 대고 천문학적 방위비 분담을 밀어붙이고 있다. 어제는 “한국에서 10억달러(약 1조2000억원)를 받는 게 (월세 받는 것 보다)더 쉬웠다”며 조롱까지 했다. ▶영원한 우방이라는 미국이다. 태극기 행렬에 성조기가 함께 하는 한국이다. 그런 한국을 대하는 미국의 태도라 더 실망스럽다. 독도 영유권에 모호하게 답하고, 방위비 인상에 가혹하게 몰고, 미국 방문에 담을 쌓아놓고 있다. ‘이 변호사’는 미국 가는 걸 포기한 모양이다. 이제 얘기가 나와도 ‘뒤끝 작렬 미국’이라며 웃고 만다. 그러면서 말한다 “나는 오사마 빈 라덴 급 테러리스트야”.
김종구 주필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