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명절 가족 갈등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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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은 1989년부터 사흘 연속 공휴일이다. 2014년 대체휴일제까지 도입돼 ‘가을 휴가’와 같다. 추석 연휴는 모처럼 만난 가족ㆍ친지와 정을 나누는 즐거운 시간이지만 귀성ㆍ귀경 전쟁에다 차례 준비, 손님 대접 등으로 몸과 마음이 지치는 힘든 시간이기도 하다. 특히 배려심 없는 말과 행동으로 상처를 주고 얼굴을 붉히고, 그러다 갈등이 폭발한다. 사소한 말다툼이 칼부림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고, 명절 후 이혼하는 부부도 상당수다.

추석 다음날인 지난 14일 고양의 한 아파트에서 부부싸움을 하던 남편이 아내를 흉기로 찌른 뒤 자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40대 부부인 이들은 새벽에 심하게 싸움을 벌이다 남편이 부인의 등을 흉기로 찔렀고, 범행 직후 자해를 시도해 둘 다 중상을 입었다. 추석 당일인 13일 청주에서는 어머니가 사는 아파트에 불을 지른 40대 방화범 아들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 남성은 15층짜리 아파트의 9층 어머니 집에 들어가 불을 지르고 빠져나왔고, 어머니는 다행히 외출 중이었다. 방화로 아파트 주민 200여 명이 긴급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고, 30여 명이 병원 치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왜 부부싸움을 했고, 왜 어머니 집에 불을 질렀는지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명절이면 가족간 갈등으로 인한 사건이 종종 일어난다. 명절은 부부 갈등, 고부 갈등, 세대 갈등, 남녀 갈등이 폭발할 수 있는 시기다. 표면 아래 있던 반목과 갈등이 명절을 계기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추석 연휴가 끝났지만 많은 이들이 오랜만에 만난 가족 간에 생긴 갈등으로 우울감을 호소한다. 정신과를 찾는 사람도 많고, 법원을 찾는 부부도 많다.

통계청의 ‘최근 5년간 이혼 통계’를 보면 설과 추석 명절 직후인 2∼3월과 10∼11월의 이혼 건수가 바로 직전 달보다 평균 11.5%나 많다. 지난해 추석 다음 달인 10월에 협의이혼 신청은 총 1만2천124건이다. 전월(9천56건)보다 33.9% 늘었다. 같은 기간 법원에 접수된 이혼 소송은 3천374건으로 전월(2천519건)에 비해 27.6% 증가했다.

명절에 가족이 모이는 과정에서 부부간 갈등이 새로 생기기도 하지만 평소 쌓인 앙금이 악화돼 폭발하는 경우가 많다. 명절증후군의 부작용이 많이 알려져 갈등을 만들거나 증폭시키지 않으려 조심한다는데도 쉽지 않다. 때문에 ‘추석을 없애자’는 국민청원에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고, 차례 문화를 거부하는 가구도 늘고 있다. 명절 자체가 무슨 죄가 있겠는가. 불필요한 갈등을 유발하지 않도록 서로 조심하고 배려하는 수밖에. 부부ㆍ가족 간의 대화와 소통, 배려는 늘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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