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적반하장의 기술?

김경희 인천본사 차장 gaeng2da@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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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김경희씨죠?”

“네, 누구시죠?”

“여기 창원지검이고요. 저는 수사관 OOO입니다.”

창원. 가본 적도 없고 연고도 없는 곳의 검찰청에서 어느 날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법조 기자로 출입한지 수년째. 어쩌면 전에 검찰에서 만난 적이 있는 사람인가 싶어 좀 더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경희씨 계좌가 보이스피싱 범죄에 이용됐어요. 통장에서 2천400만 원 1번, 7천만 원 1번 이렇게 빠져나갔는데, 알고 계셨어요?”

‘아, 이게 보이스피싱인가’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던 그때, 수화기 넘어 쉴 틈 없이 몰아치는 소리가 들렸다.

“이게 지금 연루된 사람만 수백 명이에요. 굉장히 심각한 일입니다. 아시겠어요?”

마침 인천지검에서 일하고 있던 터. “제가 지금 인천지검에 있는데, 누구시라고 했죠?” 다시 물었다. 그러자 수화기 너머 사람의 목소리가 커진다.

“OOO이라고요. 지금 이게 가벼운 일이 아닌데, 이런 식으로 하시면 본인한테 불리할 수 있어요.”

수백 명이 연루되고, 그 정도 사안이라면 정식으로 출석요구서를 보내는 게 일반적이지 않을까 싶어 물었더니 갑자기 화를 내기 시작한다.

보이스피싱이란 사실을 충분히 인지했음에도 마음 한 켠에 ‘혹시나’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한참을 이야기하다 “문제가 있다면 정식으로 소환통보를 하라”고 말하자 “소환장 갈 거니까 출석 제대로나 하라”는 날선 말이 돌아온 후 통화는 마무리됐다.

전화를 끊고 나자 나름 오랜 시간 사회부에서 일했던 기자조차 흔들리게 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고민이 들었다.

방송에서 보는 것과 달리 너무나 유창했던 우리말, 속사포처럼 범죄 혐의를 쏟아내던 디테일함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적반하장의 태도였다.

분명 사기를 치고 있으면서도 마치 장난스럽게 전화를 받는 필자의 잘못이란 듯한 태도. 당당하게 소리 높여 필자를 꾸짖던 목소리. 그것이 흔들림의 원인 아니었을까. 우기면 사실이 되는 세상,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기는 세상을 사는 현실이 그들의 적반하장식 영업(?)을 가능하게 한 것 아니었을까 하는 씁쓸함이 돌았다.

김경희 인천본사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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