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돼지열병 ‘초비상’] 강화 현장 공무원들 ‘지옥같은 나날’

밤낮없는 ‘살처분’… 묻히지 않는 ‘트라우마’

“구제역 당시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요. 생매장한 곳 옆에 천막에서 지냈는데 밤이면 돼지들이 살겠다고 안에서 우는 소리가 들리고 했어요.”

지난 2010년 겨울부터 2012년 봄까지 인천을 포함해 전국 11개 시·도 75개 시·군·구를 강타한 구제역은 살처분을 관리 감독했던 공무원에게 큰 트라우마를 남겼다. 당시 돼지를 살처분한 곳을 지키며 밤을 샜다는 A씨는 “당시에는 포크레인으로 살아있는 돼지를 구덩이로 밀면 자기들 무게에 눌려 죽었다”며 “살아있는 돼지들은 살겠다고 올라오다가 바닥에 깔아놓은 비닐 등을 다 찢어버려서 물도 새고 지켜보기가 힘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현장 공무원의 트라우마는 누구도 책임져주지 않았다. 공무원 B씨는 “자기가 직접적으로 트라우마를 앓고 있다고 밝힌 사람은 없었죠. 하지만 공무원 사회 내부에서는 이러다가 트라우마에 걸릴 것 같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떠돌았어요”라며 “하지만 이런 것들에 대한 지원은 전무했죠”라고 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아프리카 돼지열병(ASF)이 창궐한 강화지역의 전체 돼지에 대한 살처분을 승인하면서 현장을 관리 감독하는 공무원의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29일 인천시 등에 따르면 현재 강화지역 3만8천마리 돼지를 살처분 하고있다. 현재 1만여마리가 넘는 돼지를 살처분했고, 오는 10월5일까지 남은 2만8천여마리를 살처분 할 계획이다. 현재 살처분 대상 농가 1곳 당 보건환경연구원·축협 직원 등 모두 5명씩 투입, 약 150여명을 투입한다.

하지만 짧은 기간 동안 주야간 쉴틈없이 많은 양의 돼지를 살처분하는 탓에 설처분 관리감독을 하는 공무원의 노동강도가 큰 것은 물론, 이들에 대한 트라우마 치유 방안도 시급하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도 시에 가축 살처분·매몰 작업 참여자 심리 지원을 위해 살처분 작업 참여자에게 심리적, 정신적 치료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의무적으로 안내하고, 고위험군을 조기발견하고 치료 신청을 독려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라고 통보했다.

함태성 강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살처분 작업이 트라우마로 남지 않으려면 살처분 작업을 한 후 초기에 상황이 마음속 깊이 각인되지 않도록 하는게 필요하다”며 “공무원이 자신이 트라우마을 앓고 있다며 심리상담을 신청하는 것에만 기대지 말고 정부 차원에서 살처분 작업에 참여한 직원을 대상으로 상담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승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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