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춘재 특별법, 어차피 종신형일텐데 / 여론 편승한 입법 포퓰리즘으로 보여

국회의원 13명이 ‘이춘재 특별법’을 발의했다. 법안 명칭은 ‘화성연쇄살인사건 공소시효 폐지 특별법’이다. 취지를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다. 화성연쇄살인사건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크다. 공소시효 만료에 대한 무력감도 여간 크지 않다. 이런 때를 맞춰 나온 법안이다. 대표발의자 안규백 의원은 “반인륜적이고 잔악무도한 화성 사건의 공소시효를 폐지해 범죄자를 사회로부터 격리하자는 취지다”라며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이춘재가 입을 열 때마다 국민이 전율한다. 당초 알려졌던 화성연쇄살인 10건을 모두 자신이 저질렀다고 했다. 이 밖에도 타지역 발생 사건과 알려지지 않았던 사건까지도 털어놨다. 이렇게 이춘재가 자백한 범행은 살인 14건, 강간 및 강간 미수 30여 건이다. 살해된 피해자의 가족들과 강간 피해자 당사자들이 생존해 있을 것이다. 이들의 분노는 말로 다 못한다. 이런 여론을 정확히 위로하는 입법 행위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법 소급이다. 공소시효를 소급해 없애는 특별한 법이다. 살인자의 공소시효 15년이 적당하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다. 기존 법에 의해 이미 만료된 공소시효를 거꾸로 되살릴 수 있느냐다. 현행법에 의해 처벌 못 할 행위를 새로운 법으로 처벌한다는 것이다. 형법의 근간인 법률불소급 원칙에 정면 위배된다. 이런 논란은 법안 발의 국회의원들이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런데도 발의했고, 단박에 여론 중심으로 등장했다.

‘5ㆍ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과는 다르다. 5ㆍ18 특별법은 공소시효 소급이 아니라 공소시효 중단이었다. 1979년 ‘12ㆍ12’와 1980년 ‘5ㆍ18’ 이후 신군부는 정권을 잡았다. 전두환(7년)ㆍ노태우(5년)가 12년간 대통령을 했다. 이 기간을 공소시효에서 빼야 한다며 제정된 법이었다. ‘성공한 쿠데타’의 공소시효를 어떻게 볼 것이냐의 문제다. 쿠데타 세력의 집권 시기는 공소시효 중단으로 본다는 학설이 당시에도 많았었다.

이 경우는 다르다. 법을 소급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 처벌이 가능하다는 학설은 거의 없다. 법조계 의견도 대체로 부정적이다. ‘9명 죽이고, 5명 죽인 살인자들은 어떨 것이냐’고 묻는다. 법의 형평성 문제다. ‘권력이 멋대로 법을 소급하는 전례가 될 수 있다’고도 말한다. 법의 안정성 문제다. 발의 의원들이 잘 못한 것은 없다. 비난하자는 것도 아니다. 이 특별법안이 법 기본정신에 맞는지를 한번 물어보고 싶은 것이다.

이춘재는 현재 교도소에 있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에게 주어질 감형은 없다. 특별법이 가할 수 있는 현실적 형벌도 딱 여기까지다. 사형이 사실상 사라진 우리나라다. 20명 살해한 유영철도, 10명 살해한 강호순도 여전히 살아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법 안정성을 해하고 헌법 정신까지 어겨가며 이춘재 특별법을 만들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국회의원들의 이춘재 특별법안이 ‘입법 포퓰리즘’으로 보일 수도 있는 이유다.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