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황영조의 일본 운동화

그때, 황영조 우승을 더 빛나게 한 역사가 있다. 극일(克日)로 표현된 몇 가지 기록이다. 한국인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은 손기정이다. 그땐 일장기를 달고 뛰었다. 56년 만에 황영조가 땄다. 이번엔 태극기를 달고 뛰었다. 손기정 경기일은 1936년 8월9일이다. 황영조 경기일도 1992년 8월9일이다. 황영조가 마지막에 따돌린 경쟁자가 하필 일본 모리시타다. 황영조의 금메달은 이래서 더 국민에게 극적으로 여겨졌다. ▶당시 황영조가 신고 뛰었던 운동화 얘기가 있다. 코오롱 스포츠가 만든 한국산으로 알려졌다. 1억 원의 개발비가 들었다고 했다. 마라토너들에게 운동화는 유일한 도구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신은 운동화 상표는 그 순간부터 명품이 된다. 당시 세계 시장은 일본 아식스가 장악하고 있었다. 그 시장에 우리 상표가 파고들 신호탄이 된 것이다. 황영조가 만든 경제 극일이었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알고 좋아했다. ▶그때, 모 언론에 작은 기사가 났다. ‘황영조는 그날 코오롱 운동화를 신지 않았다.’ 코오롱이 개발한 운동화가 아니었다는 기사다. 확인 결과 사실이었다. 연습 때는 신었지만 올림픽에서는 신지 않았다. 여러 가지 불편함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결국은 다른 운동화를 신을 수밖에 없었다. 그 운동화 상표가 하필 일본산 아식스다. 언론은 더 보도하지 않았다. 모처럼 조성된 극일 자신감을 감안했던 것 같다. ▶지난 12일, 세계 마라톤계가 시끄러웠다. 인간의 한계라던 2시간대 기록이 깨졌다. 케냐 선수 엘리우드 킵초게의 1시간59분40.2초다. 마라톤계의 획을 그을 일이지만 논란이 일었다. 기록만을 위해 기획된 행사였다. 특히 운동화가 문제였다. 기술이 워낙 좋아 기록으로 칠 수 없을 정도였다. ‘기술 도핑’이라는 지적까지 나왔다. 나이키가 만든 야심작이다. ‘운동화 선진국’들 간의 경쟁은 지금도 이렇게 치열하다. ▶1992년, 황영조가 뚫지 못한 극일은 ‘운동화 산업’이었다. 우리 운동화 산업은 지금도 변방에 있다. 일본 아식스는 여전히 군림하고 있다. 더구나 그 상징적 역사의 소재로 황영조를 써먹는다. 2004년, 아식스 오니츠카 회장이 방한했다. 언론에 자랑했다. “60년대 아베베, 90년대 황영조가 아식스를 신고 월계관을 썼다.” 극일의 마당은 넓다. 반도체 말고도 이겨야 할 분야가 산적해 있다. 마라톤에서 찾아본 극일 이야기다. 김종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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