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법무부 수사 개혁안 경찰 적용 땐 / 이춘재 얼굴·범죄 확인도 못하나

법무부가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을 제정했다. 조사받는 피의자의 얼굴, 피의사실 등을 공개할 수 없게 된 점이 핵심이다. 형사사건의 내용을 일체 공개할 수 없도록 했다. 피의자 또는 사건 관계인의 초상권도 철저히 보호하도록 개정했다. 공개 소환을 모두 금지했고, 출석ㆍ조사ㆍ압수수색ㆍ체포ㆍ구속 등에 대한 촬영 등도 일절 허용하지 않도록 했다. 수사기관 내 포토라인 관행도 없앴다.

원칙 자체가 새로울 건 없다. 지금까지도 형사소송법 및 하위 법체계에 규정돼 있었다. 이 원칙을 철저히 지키도록 제도화했다는 게 핵심이다. 이를테면 피의사실 공표는 사건별로 형사사건공개심의위원회 의결을 거치도록 했다. 이때 의결을 거쳐 공개할 수 있는 내용도 적시했다. 불기소처분 사건의 관련 사실ㆍ공소제기 후 현출되지 않은 상태의 정보ㆍ차관급 이상 공무원의 실명 등의 공개 여부다.

법무부의 이번 규정 개정은 원칙적으로는 검찰에 적용된다. 하지만, 검찰 수사 전단계인 경찰 수사에도 준용된다고 봄이 타당하다. 그래서 관심을 끄는 게 화성연쇄살인 사건이다. 범인으로 특정된 이춘재는 아직 언론에 공개된 바 없다. 두 달 가까운 시간 동안 철저히 경찰만 대면하고 있다. 경찰이 발표하는 내용이 국민이 접하는 유일한 정보다. 그의 얼굴 역시 언론이 각자 취재를 통해 공개된 것이 전부다.

이제 공개하라는 여론이 높다. 특히 8차 사건의 강압수사 논란이 그렇다. 이 부분에 대한 경찰 발표는 미미하다. ‘그림을 그리며 설명했다’ ‘이춘재만 알 수 있는 내용이 있다’는 정도다. 강압수사 형사들에 대한 조사 상황은 더 묻혀 있다. 그 사이 일부 전직 형사는 잠적했다고 알려진다. 사건 관계자의 직접 설명 등이 필요할 수 있다. 경찰도 잘 알고 있다. 수사 신뢰를 위해서 이춘재 공개를 고민한 바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게 모두 불가능해질 수 있다. 법무부 개혁안을 문구대로 해석하면 그렇다. 우선 경찰의 정례 수사 브리핑이 12월부터 위법일 수 있다. 이춘재의 얼굴 공개는 아예 불가능해질 듯하다. 위원회를 통한 공개도 이 경우는 모호하다. 이춘재 범죄는 공소시효가 지났다. 공판 제기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불기소처분’이나 ‘재판의 증거 현출’이라는 전제가 있을 수 없다. 심의조차 안 될 수 있는 것이다.

‘국민적 관심이 많은 사건’. 이 말의 다른 뜻은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이다. 법무부 개정안이 유력 인사 인권 보호에는 설득력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춘재 등 흉악범에게는 ‘과잉보호’의 역작용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앞으로 경찰의 해석 여부, 사건별 적용 방식 등을 지켜봐야 할 듯하다.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