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8차 사건 ‘오판이다’ 결론 낸 ‘현재 경찰’ / ‘과거 경찰’의 오류 끊어 낸 결단이었다

경찰이 화성 연쇄살인 8차 사건의 진범을 이춘재로 결론냈다. 진범 확인에 대한 재판 등의 법 절차를 거치지는 않은 상태다. 따라서 경찰 결론에는 ‘잠정적’이라는 전제가 붙을 수밖에 없다. 시기적으로는 억울한 옥살이를 주장해온 윤모씨가 재심 청구를 한 직후다. 30년 전 사건임을 감안하면 재심 판단에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발표된 경찰의 ‘오류’ 인정이다. 재판부에 건네는 경찰의 고백이라 본다.

결론의 판단이 상당히 객관적이다. 이춘재는 당시 피해자에 새 속옷을 뒤집어 입혔다고 주장했다. 이번 수사를 담당한 반기수 본부장은 “중학생인 피해자가 속옷을 거꾸로 입었다고 볼 수 없다”며 “옷을 무릎까지 내려 범행했다는 윤씨의 진술보다 이춘재 주장이 신빙성 있다”고 설명했다. 살해 방법도 이춘재는 ‘양말을 손에 끼고 목을 졸랐다’고 했다. ‘맨손 범행을 시인한 윤씨 진술보다 이춘재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발표했다.

‘현재 경찰’이 ‘과거 경찰’을 조사하는 일이었다. 경찰 전체의 오명으로 비춰질 위험도 있었다. 일부에서 감추기 조사, 축소 조사, 왜곡 조사의 우려를 제기한 것도 그래서다. ‘제3의 조사 기구가 필요하다’는 수사 초기 지적도 그래서 나왔다. 하지만, 모든 건 기우가 됐다. ‘현재 경찰’은 ‘과거 경찰’의 잘못을 있는 그대로 조사했다. 그 결과를 국민과 법원 앞에 공개했다. 윤씨가 왜 ‘지금 경찰은 100% 신뢰한다’고 했는지 알 듯하다.

물론 오판이 우려되는 상황은 있었다. 이춘재 특정 직후 경찰이 ‘과거 수사팀’을 수사팀 고문으로 위촉하겠다고 했다. 위험천만한 발표였다. 과거 수사를 기억하는 많은 이들이 우려를 표했다.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은 실패한 수사다. 용의자로 몰렸던 억울한 시민이 자살하는 일도 있었고, 정신병을 얻어 고통받는 일도 있었다. 현 수사를 ‘자문’할 자격이 없다. 우리가 ‘추억 팔이’에 빠진 일부 과거 경찰에 ‘자숙하라’고 했던 이유다.

8차 사건의 진범 논란 이후 경찰은 냉정해졌다. 과거 수사팀의 목소리를 철저히 배제했다. 잠재적 조사 대상으로 전환했다. 모든 상황에 선입견 없이 접근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얻은 결과가 이번 결론이다. 8차 사건의 진범을 이춘재로 보는 게 합리적이라는 결론이다. 과거 수사팀과의 단절이 없었다면 쉽지 않았을 결론이다. 8차 사건 논란 초기까지도 ‘이춘재 영웅심리’ ‘정액 검사’ 등의 변명으로 일관하던 ‘과거 경찰’들이었다.

‘현재 경찰’이 넘을 고비는 남았다. ‘오류 수사’의 원인 행위를 밝혀야 한다. 30여 년 전 조사실에서 있었던 ‘진실’을 밝혀야 한다. 과거 수사팀의 주장이 일부 소개되고 있다. 여전히 ‘국과수 결과가 있어서 고문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윤씨가 죄를 짓지 않았는데도, 국과수 결과를 보여주자마자 ‘내가 죽였다’고 시인했다는 얘기인가. ‘탁’ 치니 ‘억’하고 죽더라가 생각난다. ‘현재 경찰’에 대한 국민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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