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꼭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며칠 전 무릎이 아파 찜질팩 하나를 인터넷을 통해 샀다. 기다리던 물품이 도착하면 왠지 마음이 설레고 즐겁다. 찜질팩에는 손바닥 반 정도 크기의 스티커가 붙여져 있었는데 “꼭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습관처럼 주의사항을 떼어버리고 서둘러 제품을 사용하는 내 모습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눈앞에 보이는 당장의 편리와 욕구를 위해 나는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얼마나 많은 주의사항을 보지도 않고 내버린 걸까.

주의사항의 사전적인 의미는 마음에 새겨 두고 조심하는 것, 일종의 경고 사항이다. 경고는 안전하고 올바른 사용을 위해 제품의 기능은 물론이고 제품의 고장이나 부작용의 원인 그리고 그에 따른 응급 조치사항도 포함한다. 그러니 제품 사용 시 사고나 위험 등 불이익을 당하지 않으려면 반드시 알아야 하는 사항이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자신을 위해 발령되는 수만 가지 위험주의보를 얼마나 쉽게 건너뛰며 살고 있는가. 아무렇지도 않게,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라는 환상을 가지고. 

 영화 <클릭>은 우리 삶에서 무엇을 우선순위로 여기며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인생역전을 노리며 열심히 승진의 꿈을 키우는 건축가 마이클은 일과 가정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고 애쓴다. 어느 날, 주인공은 한 번의 클릭으로 모든 것을 조정할 수 있는 만능 리모컨을 사려고 마트로 향하고 마트 한구석에서 정체불명의 남자로부터 리모컨 하나를 얻게 된다. 놀랍게도 시간여행까지 가능한 이 리모컨에는 사용법이 따로 없다.

다만, 반환이 안 되고 자주 누른 버튼의 패턴은 리모컨 스스로 자동모드로 전환된다는 점이 특이했다. 쌓인 업무로 인해 귀찮아진 가족들과의 저녁식사는 빨리감기 버튼으로 건너뛰고 업무를 이유로 아내와 함께하는 시간이며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은 빨리감기로 건너뛸 수 있으니 이만한 편리가 또 있을까. 달콤한 승진의 순간도 하루빨리 만끽하고 싶은 마음에 빨리감기를 눌러 시간을 건너뛴다. 하지만, 승진의 기쁨도 잠시,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승진과 함께 흘러가 버린 1년이라는 시간과 멀어져 버린 가족들이었다. 이미 아내와는 이혼절차를 밟는 중이었다. 불행하게도 그는 자신의 죽음을 목전에 둔 상태가 돼서야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는다. 

 영화는 어떻게 보면 ‘우리 삶에서 무엇이 중한가?’에 대해 묻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 속의 마이클처럼 우리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으려 아등바등 살아간다. 하지만, 그 속에도 분명 우선순위라는 것이 있다. 끊이지 않는 일과 성공을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동안에 어쩌면 우리는 살아있음만으로 넉넉히 복되고 감사하다는 사실을 놓치고 사는지 모를 일이다. 삶이 매 순간 우리에게 던지는 위험주의보를 꼼꼼히 살피며 살아야 할 이유이다. 모든 순간이 다시없는 순간이기에 더욱.

김창해 천주교 수원교구 사회복음화국장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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