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열이도 없고 종범이도 없고…”
지난 1998년 KBO리그 개막을 앞두고 김응용 전(前) 해태 타이거즈 감독(79)이 일본으로 진출한 선동열(56)과 이종범(50)의 공백을 토로하며 내뱉은 말이다. 당시 ‘해태 왕조’라 불리던 팀을 15년 가까이 이끌던 김 감독이 이처럼 토로한 데는 선동열이라는 투수의 기량과 이름값이 걸출했기 때문이다. 광주일고와 고려대를 거쳐 한 차례 스카우트 파동을 거친 끝에 지난 1985년 후반기부터 KBO리그에 데뷔한 선동열은 데뷔 첫 해 반 시즌만 소화하면서도 111이닝 동안 7승에 평균자책점 1.70을 기록하며 역사의 시작을 알렸다. 그리고 이듬해 완투만 무려 19번을 하며 262와 3분의 2이닝 동안 평균자책점 0.99와 24승을 수확하면서 전설이 됐다. 그는 일본에 진출하기 전까지 10년 간 1천647이닝을 투구하며 146승 132세이브를 따냈고 평균자책점은 1.20으로 ‘국보급 투수’라는 세간에 걸맞는 성적을 거뒀다.
그런 가운데 그가 화려했던 학창시절과 KBO리그 시절, 영욕의 세월이었던 NPB리그(일본프로야구) 시절, 그리고 우승반지 개수와 별개로 호평과 혹평이 오가던 삼성 라이온즈ㆍKIA 타이거즈ㆍ대한민국 야구국가대표팀 감독 시절을 반추하고 자기고백을 담은 신간 <야구는 선동열>(민음인 刊)이 출간됐다.
‘투수 선동열’을 성공으로 이끈 요인으로는 유연한 몸, 역동적이면서도 정석적인 투구폼, 커맨드가 가미된 묵직한 속구와 역대 최고라 불리는 슬라이더 등이 지목된다. 하지만 이번 신간에는 이 같은 피상적인 요인 외에도 그의 유년 시절과 당시 만난 스승과 동료들, 국가대표와 프로에서의 일화, 감독으로 겪은 시행착오와 후회 등이 담겨 있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인간 선동열’의 면모를 느낄 수 있다.
저자는 대표적으로 초등학생 시절 매일 야구 일기를 쓰게 한 개인교사와의 일화, 고려대 졸업 후 메이저리그 진출을 위해 본의 아니게 일으킨 스카우트 파동 당시 정권과의 이해관계, 일본 진출 이후 만난 귀인들 및 소속팀 주니치 드래곤즈와 연고지 나고야에서 겪은 일화, 투수코치로서는 성공했지만 감독으로서는 애매해진 평가 등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이번 신간의 첫 챕터는 ‘나는 국보가 아니다’라는 충격적인 구절로 시작한다. 그가 말하는 솔직한 야구 인생, 인생관, 자신이 바라 본 야구 등은 어떤 것일까? 이를 알아보는 좋은 시간이 될 전망이다. 값 1만6천원
권오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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