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원칙을 넘어서는 화합의 삶

12월에 이르렀어도 온난화의 영향인지 젊었을 때에 만났던 겨울의 매서운 바람은 느낄 수 없으나, 차가운 날씨에 따스함을 찾게 되면서 바쁜 일상 속에서 묻어두었던 일상의 문제들을 하나씩 기억에서 꺼내어 되돌아보게 된다. 이 세간에서의 삶은 윤회의 연속이라고 하였던가! 매번 새롭게 다짐하며 더 발전된 사유와 처신을 되새기면서도 현실에 부딪혀서 우리들의 일상을 관찰하면 아쉬움이 남을 때도 많다.

우리가 존재하는 세계는 하나하나의 세계가 중첩된 세간으로 구성되어 있고 많은 부류의 중생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삶의 향기를 그려내면서 자신에 알맞은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러한 세간의 구성은 중생계를 이루고 되고 이 가운데에 변하지 않는 진리가 존재하게 되는데 불교에서는 이것을 법이라고 이름한다.

인생에 긍정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거나, 부정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더라도 우리가 극복할 수 없는 문제는 태어나고 늙으며 병들고 죽는 삶의 일련의 과정이다. 불교에서는 죽음은 또 다른 한 인생의 시작이고, 지금의 삶의 터전과 자취를 떠나가는 것이다. 이와 같은 고통 외에도 세 가지의 고통을 더 말하고 있는데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이고, 원수와 만나는 것이며,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소유에 대한 욕망을 충족하려고 인류는 얼마나 많은 희생과 고통을 감내하였는가? 현재에도 지구촌의 여러 지역에서는 자신과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한 갈등과 충돌이 계속하여 일어나고 있고, 인간으로서는 인정받기 어려운 광기를 나타내기도 한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세간과 우리를 고통스럽게 압박하는 현실은 모두 우리들의 마음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현대의 인간들은 신(神)의 범주라는 생명을 과학을 통하여 조작하는 단계까지 접근하고 있고, 물질을 바탕으로 삼는 현상계에서는 이와 같은 과학의 눈부신 성장을 이루었다. 그렇지만, 우리의 눈앞에 펼쳐진 우리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사람의 향기가 그리워서 산문을 나서 팔달문 앞에 펼쳐진 대로를 걷노라면 활력과 희망찬 모습으로 밝게 걷는 사람들을 찾아보는 것은 어렵고, 대체로 무엇인가에 쫓긴다는 느낌이 뇌리를 스치며, 인간의 향기는 사라지고 어느 순간에 멈추어진 딱딱한 현실에 마주하게 된다.

현대사회에서 강조되는 언어로 신뢰를 바탕으로 삼는 법과 원칙에 따른 사회질서를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법과 원칙은 누구를 위한 것이고 누구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인가? 인간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상식을 갖춘 대중에게 기준이 맞추어져야 하고, 집행되어야 한다. 즉 대중의 지지와 화합의 바탕 위에 특정한 집단의 이기주의를 타파해야 하는 당위성을 지닌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양극화에 의한 갈등이 증폭되고 집단이기주의가 활성화가 이루어졌어도 화합과 양보라는 언어는 잊힌 것이 오래라는 씁쓸한 생각이 일어나는 것은 나만의 아집인가를 되돌아본다.

올해도 한 해가 저물어가는 시간을 바라보면서 내일은 우리가 화합하는 모습이 더욱 가깝게 다가올 것이라고, 내일은 서로 양보하면서 갈등보다는 타협을 먼저 생각한다고, 내일은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것에 앞서서 인간이 지닌 향기의 꽃을 피운다고, 내일은 매 순간에 서로 사랑하면서 자비의 열매를 맺어 인간세상에서 극락과 같은 세계를 이룰 것이라고 사유하면서 내일의 희망을 기대하여 본다.

세영스님 수원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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