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2019년 우리는 무엇을 보았나?

강원도에 있는 예맥문화재연구원이 얼마 전 양양군 오산리에 있는 신석기 습지를 발굴한 바 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습지 유적에서 알뿌리를 발굴한 것, 지하 4m에서 발견된 이 식물은 연구원의 증류수에 담아 보관했는데 거기에서 싹이 나온 것이다. 학계에서는 이것을 7천 년 전 식물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함께 발굴된 토기의 연대를 봐서 그렇게 추리한다는 보도이다.

7천 년의 그 긴 세월을 땅속 깊이 숨겨져 있다가 물과 햇빛의 세상에 나오자 새싹을 움트게 한 그 위대한 생명력이 경외롭기만 하다. 7천 년은 아니어도 외국에서는 2천년 전 씨앗이 발아한 경우도 있다니 어쨌든 씨알의 생명력은 신비롭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인간이 간직하는 고귀한 씨앗은 무엇일까? 식물이나 동물에게는 없는 정신, 영혼이 그 대답이 아닐까? 이를테면, 인권, 자유, 평등, 정의…. 이 같은 보편적 가치를 위해 인류는 강원도 양양에서 발굴된 7천여 년 전 식물의 씨앗보다 더 오랜 세월을 끊임없이 갈구해 온 것이다. 그리고 그 싹은 한꺼번에 발아하지 않고 오랜 갈등과 고난을 겪으면서 조금씩 잎을 피웠다.

유럽 백인들이 아메리카 인디언들을 무자비하게 몰아내던 세월이 있었고, 아프리카 흑인들이 짐승처럼 노예로 팔려나가던 때도 있었다. 그것이 그때는 무의식적으로 자행되었지만, 이제는 상상할 수도 없는 반인륜적 행위로 치부된다. 종교의 자유, 남녀평등 같은 것도 그렇게 좌절과 도전 끝에 이만큼 성장해 왔다. 물론 아직도 인간의 보편적 가치가 아득한 중세시대에 머무는 나라도 있지만, 역사는 계속 진화를 멈추지 않는다. 이와 같은 ‘역사의 진화’ 과정에서 2019년을 보내며 우리는 무엇을 감지(感知) 할 수 있는가? 나는 이런 문제를 깊이 생각하다 지난주 문득 이건리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이 임기 3년의 절반을 남겨 놓고 사표를 던졌다는 보도를 보고 어떤 대답을 얻을 수 있었다. 이건리씨가 차관급인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된 것은 지난해 4월. 그런데 그는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부인 정경심교수가 기소되자 남편 조국을 법무부장관에 임명하는 것은 ‘이해 충돌’에 해당된다며 임명 반대의 의견을 제시했었다. ‘이해 충돌’은 공직자의 사적인 이익과 공익 수호의 책무가 충돌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공직자윤리법에 ‘이해 충돌 방지 의무’를 못 박고 있다. 따라서 그의 주장은 법 정신에 충실한 소신이었는데도 조국 전 법무부장관은 임명되었다. 또한, 전 청와대 김태후 특감반원의 폭로도 ‘공익 신고자’로 인정함으로써 유튜브를 통한 김태후씨의 활동이 가능해졌다고 하겠다.

이건리 부위원장이 자신의 소신과 양심의 벽에 부딪혀 비록 사표를 던지고 물러났지만 이로 인해 많은 사람에게 정의와 공정을 생각하게 하는 계기를 제공했다는데 점에 대해서는 의미가 크다. 이런 것이 결국 하나하나 모여 큰 물줄기를 이루는 것이고 그래서 역사는 진화하는 것이 아닐까?

따라서 2019년은 ‘조국 사태’로 소용돌이 쳤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우리 국민에게 공정, 평등, 정의가 얼마나 소중하며 그러나 그 길이 얼마나 멀고 험한 것임을 일깨워 준 소득이 있었다. 2019년, 우리는 그것을 보았고 절절히 깨달은 것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