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지식인들의 현실 인식, 이 정도밖에 안되나

전국 대학교수들이 2019년을 정리하는 사자성어로 ‘공명지조(共命之鳥)를 선정했다. 별로 들어보지 못한 한자성어다. 불교 경전에 등장하는 한 몸에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새라고 한다. 운명공동체라는 의미란다.

서로가 이기려고 하고, 자기만 살려고 하면 다 죽게 된다는 안타까움이 들어 선정했다고 하는데 소위 지식인이라고 하는 대학교수들의 현실 인식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나 우려된다.

지금 상황은 같이 살고 같이 죽자는 것이 아니고 나만 살고 꼭 너를 죽이겠다는 것과 다름 아니다. 공명지조가 아니라 존망지추(存亡之秋 : 존속하느냐 멸망하느냐의 절체절명의 시기)다.

23일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좌파 대통령은 아르헨티나 경제 상황이 사실상 디폴트(채무불이행) 상태라고 선언했다. 실업률은 10%대를 웃돌고 있고 물가상승률은 55%에 달한다. 4년 전인 2015년 대선에서 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포퓰리즘에서 나라를 해방시키겠다”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공공요금 보조금을 줄이고, 연금 수령 기준을 까다롭게 하고, 비대해진 공공조직 축소를 시도했다.

세금 보조금이 줄어들자 치솟는 생활비에 아르헨티나 국민은 분노했고, 공무원들은 자신이 해고될까 시위대로 변신했다. 결국 아르헨티나 국민은 다시 좌파 포퓰리즘 정권을 선택했으나 이 꼴이 났다.

포퓰리즘의 단맛에 중독되면 얼마나 끊기 어렵고 그 최후는 나라의 붕괴라는 끔찍한 결과다. 역대 아르헨티나 좌파 정권의 단골 메뉴는 공무원 수 증가, 학생들에게 500만대의 공짜 노트북 살포, 민간 기업의 국유화, 부자에 대한 부유세 폭탄 등이다.

아르헨티나는 20세기 중반 돈을 퍼주는 페론주의의 대실패로 포퓰리즘의 허상을 똑똑히 경험했지만 아직도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많다. 포퓰리즘은 가까이 있으면서 일단 중독되면 치유가 어려운 마약과 같다. 지금 현 정권이 그 길을 가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 경제로 대표되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이미 임계점을 넘어섰다. 시대를 통찰하는 생각과 이를 실현할 리더십을 문 대통령에게 기대할 수 있을까? 정치인이 나라를 제대로 끌지 못할 때 지식인들의 책무는 막중하다.

466년 전 남명 조식은 퇴계 이황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요즘 학자들(유생들을 비유)은 물 뿌리고 마당 청소도 못하면서 입으로는 천리(하늘의 이치)를 논하고 허명을 훔쳐 세상을 속이고 있다”라고.

공리공담에 빠져 말장난만 주고받던 당시 성리학자들에게 불호령을 내린 것이다. 곽재우를 비롯 임진왜란 당시 9천여명의 의병 중 7천여명이 모두 남명의 제자였다. 지식인이 갈 길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지금 우리의 지식인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뻔한 소리를 하지 말아야 한다. 황희 정승의 ‘너도 옳고, 그도 옳다’식의 애매모호한 말과 ‘너도 틀렸고, 그도 틀렸다’식의 양비론이다. 희망 고문이고 허탈할 뿐이다.

위선과 선민의식으로 가득 찬 지식인의 언어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 우선 올해 사자성어부터 고치기 바란다. 그리고 결기있는 말과 행동을 보여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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