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새해를 맞으며 주요 경제단체장들은 신년사에서 희망보다 위기를 강조했다. 현재 우리 경제가 위기라고 진단하고, 규제완화를 통해 기업 활력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년사는 보통 희망을 전하는 메시지가 주를 이루는데 경제단체장들이 한목소리로 위기를 강조한 것은, 그만큼 기업 상황이 좋지 않다는 절박함의 표현이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장은 신년사에서 “모든 것을 원점에서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새 틀을 만들어야 할 시기”라면서 “낡은 규제, 발목을 잡는 규제는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길을 터줄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새로운 시장 개척을 위해선 선제적인 연구와 과감한 투자가 절실하다”고도 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은 “기업이 투자와 생산을 늘릴 수 있는 환경 조성이 국가 최우선 과제로 인식돼야 한다”면서 “정책기조가 기업 활력 제고로 전환되길 기대한다”고 했다. 손 회장은 법인세율·상속세 인하, 유연근로제 활성화 입법, 성과주의에 기반한 임금체계 개편, 근로조건 결정 개별·유연화 등을 건의했다.
김영주 한국무역협회장은 “고령화·저성장·저소비로 세계 무역의 양적 성장이 한계에 봉착했다”면서 “우리 수출은 기존 성장모델만으로는 성공 신화를 이어갈 수 없으며 성장의 패러다임을 물량에서 품질·부가가치로 전환해야 한다”고 했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위기는 재도약의 새로운 기회”라며 “중소기업에서 한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신년사에서 “우리 산업 생태계의 역동성이 떨어지는 징후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고 밝혔다. 신년 인터뷰에서는 “국회의 입법 미비, 공무원의 소극 행정과 규제, 기득권 집단과의 갈등이 경제를 더욱 힘들게 한다”고 토로하며 “경제가 정치에 휘둘리는 상황이 상시화했는데 되풀이되지 않게 막아야 한다”고 했다. 국회를 규제 개혁을 가로막는 대표적인 집단으로 지적하며 “이번 20대 국회는 다시 반복 안 되면 좋겠다”고도 했다.
정치권의 눈치를 보는 경제계가 작심하고 쓴소리를 쏟아낸 건 경제 상황이 그만큼 심각해서다. 우리 경제가 성장할 것인가, 고꾸라질 것인가의 상당부분은 정치권에 달렸다. 대한상의가 20대 국회의 경제분야 입법 성과에 매긴 점수는 4점 만점에 1.66점으로 ‘낙제’였다. 정치권이 위기 극복과 경제 회생에 앞장설 의지가 있다면 재계 호소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기업이 정치에 발목 잡힌다’는 말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아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은 규제완화 등 법과 제도를 정비하면서 기업의 과감한 투자를 유도해야 한다. 기업 경영을 위축시키는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투자가 늘어나기를 바라는 건 말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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