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지 주제로 그림 그리고 각자 작품 설명
‘회상기법’ 활용… 치매 예방·치료 큰 효과
신현옥 회장 “기억 되찾는 모습 볼 때 뿌듯”
“미술로 어르신들의 감춰진 상상력을 끄집어 낼 때, 큰 행복을 느낍니다!”
31일 오전 11시께 수원 권선구 세류2동에 있는 한국치매미술치료협회 사무실. 삼삼오오 모인 어르신들은 한가지 주제를 놓고 그림 그리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이날은 ‘치매 예방을 위한 미술 수업’의 마지막 수업이 있는 날이다. 오늘의 주제는 ‘백두산’. 어르신들은 백두산에 태극기가 있는 모습을 상상하며 각자의 작품을 흰 도화지에 펼쳐냈다.
수업이 끝나고 각자 그림을 소개하는 시간이 주어졌다. “해를 향해 떠나는 배를 나타내셨네요. 2019년이 가고, 2020년 새해를 향한다는 것이네요.” 백두산 천지의 태극기와 배를 그린 김영섭 어르신(77)의 작품을 보며 신현옥 한국치매미술치료협회장(67)이 느낀 점을 말하자 어르신들의 얼굴이 일제히 밝아졌다. 각자 작품을 설명하고, 의견을 나누는 어르신들 표정은 어린아이처럼 해맑았다. 이날 어르신들의 그림에는 지나간 세월에 대한 아쉬움부터 다가오는 새해에 대한 기대감,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 그리움, 기쁨 등 희로애락이 모두 담겨 있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어르신들의 작품은 1만여 점이 가까워져 간다.
이들은 모두 치매 예방을 위해 찾은 이들이다. 한국치매미술치료협회는 평일 오전 10시30분부터 시작, 그림 그리기 등을 통해 인지 강화에 도움이 되는 미술 치료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어르신들은 날마다 몇 가지 주제를 놓고 각자만의 독특한 그림을 그린다. 특히 치매 어르신들의 젊은 시절과 기억ㆍ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회상기법’을 활용해 치매 예방ㆍ치료에 큰 효과를 주고 있다.
벌써 35년간 계속된 신 회장의 이 같은 활동은 시어머니로부터 시작됐다. 지난 1973년, 22살의 어린 나이의 새색시가 된 신 회장은 결혼과 동시에 약 10년간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 수발에 나섰다. 이에 치매 어르신에 대한 아픔을 공감, 서양화를 전공한 자신의 특기를 살려 ‘자식이 된 마음’으로 일을 시작한 것이다. 이후 그는 1984년 한국치매미술치료협회를 결성해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를 들고 치매 노인이 있는 곳마다 찾아가 무료로 방문 강습을 해오고 있다.
신 회장의 프로그램은 일방적인 교육 및 치료의 개념이 아닌, 어르신과 ‘공감 활동’이다. 그는 “화해와 용서의 정신이 없는 요즘 시대에 어르신들의 기억은 추억과 감성, 소통과 온기가 담겨 있다”면서 “처음에는 단색으로 시작하다 조금씩 각자의 색깔로 기억을 표현한다. 어르신들의 그림을 보면 각자 이야기를 모아놓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신 회장은 “내 인생을 바친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체가 행복”이라면서 “어르신들의 상상력을 끄집어낼 때,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며 기억을 되찾는 과정을 볼 때 매우 뿌듯함을 느낀다”며 미소를 지었다. 권오탁ㆍ김해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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