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소장은 어차피 공개됐다. 동아일보가 단독 입수해 이틀째 보도하고 있다. 추미애 장관이 “공소장 공개는 잘못된 관행”이라고 말 할 때, 국민은 공소장을 읽고 있었다. 애초부터 막아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피고인 13인에게 모두 보내진다. 당사자와 변호인, 주변인이 공유할 자료다. 고발인 또는 관련 피해자들의 공소장 열람 권리도 있다. 자유한국당이 고발인 자격으로 공소장 열람을 신청해놓고 있다. 이걸 막겠다고 나선 것부터가 이해 못 할 오판이었다.
남은 건 비난뿐이다. 특히 같은 진영 내에서의 비난이 거세다. 친여 성향 단체인 참여연대는 5일 장문의 성명을 통해 ‘법무부의 공소장 제출 거부를 납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법제사법위원을 맡고 있는 민주당 금태섭 의원도 “공개가 원칙이다. 이는 민주주의 국가의 기본이다”라고 비난했다. 정의당도 대변인 논평을 통해 “공소장 비공개는 무리한 감추기”라며 유감을 공식 표명했다. 진중권 전 교수는 “(공소장 비공개는) 노무현 정권이 국민에게 준 권리를 다시 빼앗은 것”이라며 비난했다.
자유한국당은 물을 만났다. 하명수사ㆍ선거개입의 정황이 확실해졌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황교안 대표는 “공소장을 기어이 꼭꼭 숨긴 것을 보면 이것이야말로 ‘셀프 유죄 입증’이 아닌가”라고 밝혔다. 검찰 수사 단계에서 대략의 공소사실은 이미 알려졌다. 공소장이 공개된다고 새로운 범죄 사실이 드러날 것도 없었다. 오히려 공소장 비공개가 정부 여당에 부도덕성만 상처 내는 꼴이 됐다. 긁어 부스럼 만든다는 말이 딱 맞는 상황이 됐다.
상황이 이런데, 추 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방문했다. 서울고검 청사에 법무부 대변인실 사무실을 마련해준 데 대한 감사의 표시라고 했다. 돌발 행보다. 둘의 만남은 지난달 7일 윤 총장이 취임 인사차 정부과천청사를 찾은 이후 두 번째다. 이후 법무부와 검찰은 연일 충돌하고 있다. 하루 전만 해도 공소장 유출 경위에 대해 ‘검찰을 조사하겠다’던 추 장관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총장을 찾았다. 언론도, 검찰도, 심지어 여권도 어안이 벙벙해지는 대목이다.
주홍글씨가 있다.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할 때 한 축이 추 장관이었다. 새천년민주당이 주도했고, 거기 상임중앙위원이었다. 여권을 뒤흔들어 놨던 드루킹 사건도 추 장관에서 시작됐다. 당 대표이던 추 장관이 수사를 촉구했다. 추 장관의 과한 행동에는 이런 과거에 대한 흔적 지우기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이번 공소장 공개 거부는 또 한 번의 부메랑이 됐을 뿐이다. 야권에는 정권 비난의 무기를 안겨줬고, 여권에는 없어도 될 부담만 안길 꼴이 됐다.
지금 필요한 것은 직분에 충실한 자세다. 법이 부여한 장관직에 충실해야 한다. 검찰을 적으로 삼는 협박성 발언, 상식과 관행에 어긋나는 업무 처리, 개인적 주목을 끄는 돌발 행동 등은 도움이 안 된다. 정치권이 그에게 준 ‘추다르크’라는 별명이 있다. 좋은 뜻이 아니다. 소영웅주의적 습성을 지적한 것이고, 돌발 행동에 대한 우려를 표한 것이고, 조직을 불안케 하는 독선을 경계한 것이다. 지금 추 장관에 필요한 것은 튀지 않고 장관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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