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이달의 독립운동가 김세환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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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ㆍ1운동 101주년을 맞은 2020년 3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김세환(金世煥) 선생이 선정됐다. 김 선생은 1889년 11월 18일 수원시 남수동 242번지에서 태어났다. 3ㆍ1운동 당시 민족대표 48인 중 한사람으로, 수원지역 독립운동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교육자로 수원 교육계 발전에도 공헌했으며, 지역사회운동가로서의 역할도 컸다. 수원 출신의 독립운동가가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것은 처음이다. 자랑스럽고 의미있다.

김세환 선생은 소년시절 교회에 열심히 다녔다. 집 근처에 1901년 감리교회가 들어섰는데 지금의 북수동 종로교회다. 선생은 이곳에서 신앙과 함께 교육가ㆍ독립운동가로서의 꿈을 키웠다. 이후 서울의 외국어학교에 진학해 공부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중앙대학에서 신학문을 배웠다. 수원으로 돌아온 선생은 교직에 몸 담았다. 수원의 상업인들이 수원상업회의소를 조직하고 상업강습소를 설치했는데 여기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야학으로 운영되던 상업강습소는 일제 견제로 1916년 폐쇄 위기를 맞았으나 지역유지의 노력으로 주학으로 전환해 화성학원(華城學院)으로 이름을 바꿔 운영했다. 현재 수원고등학교 전신이다.

김 선생은 매향중학교 전신인 삼일여학교에서도 큰 공을 세웠다. 1913년 학감으로 부임한 이후 재직동안 학교 기틀을 만들었다. 학교 건물에 한반도 지도를 새겨넣어 민족의식을 고취시켰고, 1939년 폐교 위기때는 수원출신 갑부 최상희를 움직여 학교를 회생시키는데 기여했다.

3ㆍ1운동 때는 학생들의 정신적 지주이면서, 수원지역 조직책임자로 활동했다. 3월 12일 서울에서 체포된 선생은, 재판장이 “조선 독립을 위해 계속 운동할 것인가?” 물었을 때 망설임없이 “그렇다”라고 명료하게 대답했다고 한다. 옥고를 치르고 1920년 10월 수원으로 돌아왔는데 일제 간섭으로 교사 복직을 못해 곡물상을 하며 지역사회운동을 펼쳤다. 1927년 신간회에 참여하면서 수원지회장과 수원체육회장을 역임하는 등 민족주의 운동을 했다. 1945년 해방을 맞고 얼마 후 9월 16일 자택에서 운명했으며,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김세환 선생이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것에 맞춰 수원박물관이 수원지역 독립운동가를 조명하는 상설전시공간을 마련했다. 독립운동과 민족운동ㆍ교육운동에 매진했던 김 선생의 발자취를 되새겨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선생이 살았던 집터인 팔달구 정조로 792의 가빈갤러리에서는 ‘김세환 집터전시회-기억의 여정’이 연말까지 열린다. 코로나19 사태로 지금은 가볼 수 없음이 안타깝지만 진정되면 고귀한 숨결을 만나러 가보면 좋겠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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