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살기도 힘든데 마스크 살 겨를 있나요”
“쌀쌀한 날씨에 가스연료 살 돈이 없어 난로도 못 켜고 있는데, 마스크 구매를 어떻게 합니까?”
‘코로나19’의 지역사회 확산으로 온 국민이 마스크 걱정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쪽방촌 주민들은 마스크는커녕 생계유지만으로도 벅찬 하루를 보내고 있다.
17일 오전 찾은 수원시 권선구 고색동의 쪽방촌. 아무도 살지 않는 듯 조용한 이곳은 쓸쓸하다 못해 삭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1986년에 지어진 초록빛 슬레이트 지붕 아래에는 총 28칸의 방과 실외 공동화장실이 마련돼 있다. 이곳에서는 현재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8가구를 비롯해 총 21가구가 모여 살고 있다.
꽃샘추위로 꽤 쌀쌀한 바람에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흔들리는 유리문을 두드리니 이불을 뒤집어쓴 P씨(62)가 문을 열었다. 담배 냄새가 그득한 방에 들어서자 그는 박카스 1병을 건네며 웃어 보였다. 약 16.5㎡(5평) 남짓한 방에는 낡은 냉장고와 TVㆍ싱크대 등이 놓여 겉보기엔 구색을 갖춘 듯했지만, 바닥에 앉으니 냉골처럼 차가웠다.
P씨는 “바닥에 난방 장치가 없어 난로를 켜야 하는데 연료가 떨어진 지 며칠 됐다”며 “집세와 식비를 해결하면 난로를 켜기도 어려운데 마스크는 살 생각도 못한다”며 고개를 저었다. 이어 코로나 감염이 걱정되지 않는지 묻자 “주변 산업단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여럿 지나다녀 혹시나 하는 불안감에 문밖을 나서지 않는다”며 주머니 속 꾸깃한 마스크를 꺼내 보였다. 그는 지난달 구청에서 나눠준 마스크를 여태 쓰고 있었다.
P씨의 집에서 몇 걸음 떨어진 5호 방에는 할머니와 3급 지적 장애를 앓고 있는 열아홉 살 손자가 단 둘이 살고 있다. 문을 두드리자 깜깜한 방에 불이 켜지고 할머니 J씨(73)가 나타났다. 그는 오랜만에 찾아온 손님이 반갑다며 소녀처럼 맑은 미소를 지었다.
J씨는 오른쪽 귀가 들리지 않아 아주 큰 소리로 말해야 대화가 가능했다. 그는 “청각장애 검사비용이 50만원이라는데 그런 돈이 어디 있겠느냐”며 “기초생활수급비로 생계를 유지하기도 빠듯하다”고 말했다. 이어 “무릎이 안 좋아 걷기 어려운데, 손자 녀석 혼자 마스크를 사오라고 보낼 수도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 쪽방촌은 자율방역단ㆍ시민단체 등에서 주 1회 이상 방역을 하고 있지만, 별도의 마스크ㆍ손 소독제 등은 구비가 어려운 실정이다. 지난달 11일 권선구에서 마스크 150개와 손 소독제 5개를 지원했을 뿐이다.
이에 대해 수원시 관계자는 “정부가 공적 판매처를 통한 마스크 공급량을 80%까지 확대했지만, 그 안에 각 지자체에서 요구하는 저소득층 구매계획은 포함되지 않았다”며 “예산이 있어도 마스크 구매는 물론 조달 계약조차 할 수 없는 실정이다. 시 차원에서 마스크 물량을 확보하는 대로 취약계층에게 우선 배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장희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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