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장기전 들어선 코로나와의 싸움, 방향이 중요하다

이제 코로나19와의 싸움은 장기전에 들어섰다. 정은경 한국 질병관리본부 본부장은 “코로나 장기전에 대비해서 매뉴얼을 이달 말까지 준비할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 얼치기 장·차관과 정치인들의 망언에 분노한 국민이 그래도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전문가의 판단이다.

코로나 확산은 세계 경제위기의 불을 지폈다. 미국 중앙은행(연방준비제도)이 12년 만에 ‘제로(0)금리’ 카드를 15일 꺼냈으나 약발이 먹히지 않았다. 금리 인하와 돈 풀기 조치가 바이러스의 위력에 맥을 못 추고 있다. 1990년대 말 외환 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는 금융 시스템 문제였다면 코로나19에 따른 시장 충격은 기존의 정책이 작동하지 않는 실물 경기침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결국 시장에선 코로나 확산세가 본격적으로 꺾이지 않는 이상 ‘백약이 무효’라는 비관론이 팽배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17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것저것 따질 계제가 아니다. 실효성이 있는 방안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쓸 수 있는 모든 자원과 수단을 총동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비상경제회의를 통한 특단의 대책과 조치들을 하겠다”면서 ‘비상’이란 단어를 14번이나 사용했다. 대통령이 직접 경제를 챙기겠다는 의지와 각오는 좋은데 그동안 대통령의 경제 실책을 목격한 국민 입장에선 걱정이 앞선다. 비상경제 시국을 헤쳐 나가려면 무엇보다 정책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 관건인데 그 출발점은 올바르게 현실을 인식하고 그에 맞춰 경제정책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데서 찾아야 한다. 실패한 소득주도 성장에다 반시장·반기업 정책을 계속 유지하면서 돈을 퍼부은들 아무 소용이 없다. 10여 년 전 금융 위기 때 윤증현 기재부 장관은 그해 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플러스 3%에서 마이너스 2%로 무려 5%p나 낮췄다. 실제 2009년 성장률은 플러스 0.8%를 달성했다. 올바른 대책은 올바른 현실인식에서 나온다.

문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추경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면서 특단의 조치가 재정확대임을 암시했다. 정부는 이미 코로나 피해 지원을 위해 11조7천억원의 추경 예산을 편성했다. 그중 10조원이 빚이다. 그 내용도 상품권 지급 같은 선심성 세금 풀기에 집중돼 있다. 정작 시급한 소상공인·중소기업 지원액은 전체 추경의 20%에 그친다. 취약 부문 지원과 경기 부양 등을 위해 막대한 재정 자금이 필요하다. 나랏빚을 불리지 않으며 이 일을 하려면 512조원의 기존 예산을 구조조정해야 한다. ‘초수퍼 예산‘이란 이름이 붙은 올해 예산은 문제투성이다. 각종 보조금, 수당, 가짜 일자리 사업 등의 예산이 무려 54조원에 달한다. 여야 의원들의 지역구 건설 사업만 2조3천억원에 달하는 비효율적 예산 항목들을 과감히 재조정해 코로나19 위기 대응 예산으로 개편해야 한다.

위기의 끝이 언제인지 모르는데 한번 돈을 나눠 갖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고, 매달 줄 수도 없는 일이다. 빚으로 돈 풀어 이때 크게 한번 선심 쓰겠다는 생각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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