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마라톤 최초 한 팀서 20년 ‘사제의 정’ 이홍식 감독ㆍ최경희 선수

무명 선수서 마라톤 대들보로 성장시킨 신뢰와 존경의 힘

▲ 국내 여자 마라톤 사상 최초 20년을 한결같이 한 팀서 사제의 정을 이어가고 있는 이홍식 감독(오른쪽)과 최경희 선수 

훌륭한 지도자와 선수란 단순히 성적과 기량 만으로 평가받는 것은 아니다. 지도자와 선수로서의 인품, 상호 신뢰와 존중 속에서 좋은 결과가 나올 때 진정 좋은 평가를 받는다.

이 같은 신뢰 속에 20년을 한결같이 한 팀에서 스승과 제자로 인연을 이어가는 마라토너와 지도자가 있어 화제다. 경기도청 육상팀 이홍식(60) 감독과 팀의 맏언니 최경희(39) 선수가 그 주인공이다.

둘의 만남은 지난 2000년 이 감독이 경기도청 코치로 부임하면서다. 당시 고사(枯死) 위기의 경기도 여자 마라톤 부활 특명을 받고 경기도청에 부임한 이 코치는 선수들의 이동이 이미 마무리된 상황서 최경희의 가능성을 보고 영입했다.

고교 시절 전국대회서 단 한 차례 입상(3위)이 최고 성적이었던 그를 영입해 마라토너로 키우기 위해 팔을 걷었다. 이 코치의 안목과 지도력은 오래가지 않아 나타났다. 실업 첫 해인 이듬해 2월 전국실업하프마라톤대회서 2위를 차지하며 육상계를 깜짝놀라게 한 뒤 그해 4월 전국실업육상선수권서 5천m와 1만m를 차례로 석권해 2관왕에 올랐다.

당시에 대해 최경희는 “솔직히 자신감이 없었는데 코치님의 지시대로 페이스를 맞춰 뛰면서 그대로 되는 것을 보고 나도 놀랐다. 내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됐고, 경기도청에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실업 데뷔 첫 해 전국체전 5천m서 생애 첫 금메달을 따내는 등 한 해 무려 7개의 금메달을 수집한 최경희는 2년 뒤 이 코치의 계획대로 서울국제마라톤대회에서 첫 풀코스에 도전, 2시간34분21초로 4위에 오르며 가능성을 보였다.

이후 2005년 전주마라톤대회에서 풀코스 첫 우승을 차지한 뒤 풀코스 우승 8회, 하프코스 우승 5회를 기록하며 여자 마라톤의 간판으로 성장했다. 이를 바탕으로 2002년 꿈에 그리던 태극마크를 달고 2010년까지 8년간 활약하며 아시안게임 두 차례, 올림픽과 세계선수권을 한 차례씩 경험했다.

그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1년 후배인 장진숙이 혜성처럼 등장해 1년 만에 하프코스 한국신기록을 작성하며 급성장하자 심적 부담을 느껴 한동안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다.

설상가상으로 2006년 허벅지 부상이 겹치며 운동을 포기할 생각까지 했던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이홍식 감독이었다.

부상 보다도 ‘멘탈’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이 감독은 한달간 휴식을 줘 그가 안정을 취하도록 했고, 이에 보답해 최경희는 그해 10월 전국체전서 2관왕에 올랐다. 이어 2008년에는 전국체전 3천m 장애물경주서 한국신기록을 작성하는 등 제2의 전성기를 활짝 열었다. 발목과 무릎 부상 등으로 5차례 수술대에 오르기도 했으나, 그 때마다 오뚝이 처럼 재기했다.

이에 대해 이홍식 감독은 “경희는 주어진 훈련 스케줄을 묵묵히 소화하고 자신을 잘 관리하는 선수다. 타고난 재능보다는 항상 근성을 발휘해 노력하는 선수로 훈련은 물론, 일상 생활에서도 후배들에게 모범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최경희는 국내 최고의 마라토너로 전성기를 열어가면서 대기업과 국영기업체 팀에서 높은 연봉 등 좋은 조건으로 ‘러브콜’이 잇따랐지만 그 때마다 사양했다. 당장 눈앞의 이익보다는 무명시절 자신을 키워준 이 감독에 대한 의리 때문이었다.

▲ 국내 여자 마라톤 사상 최초 20년을 한결같이 한 팀서 사제의 정을 이어가고 있는 이홍식 감독(오른쪽)과 최경희 선수 (2)
▲ 국내 여자 마라톤 사상 최초 20년을 한결같이 한 팀서 사제의 정을 이어가고 있는 이홍식 감독(오른쪽)과 최경희 선수 

이제 한국 나이 마흔살에 국내 여자 마라톤 선수로는 전무후무하게 한 팀에서 20년을 보내는 선수가 됐다. 최근 계약기간이 끝나면 좋은 조건을 쫓아 팀을 옮기는 선수들과 대조적이다.

최경희는 “앞으로 체력이 닿는한 몇년은 더 선수생활을 하고싶다”고 밝혔다. 코치 제의도 마다하며 오로지 현역으로 경기도청서 선수생활을 마무리하겠다는 의지다.

이홍식 감독은 “최경희를 시작으로 잠재력 있는 선수들을 영입해 키워가면서 나 자신도 많이 배우고 자신감을 얻었다. 오랫동안 팀에 남아준 것에 대해 감독으로서 고맙다”며 “국내 여자 마라톤이 침체한 것은 선수 부족도 원인이지만 한 팀에서 지속적으로 운동을 하지 못하고 자주 팀을 옮겨 새로운 환경과 지도자에 적응하느라 시간을 허비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20년동안 무한 신뢰감 속에 약 10만㎞ 이상을 함께 달리며 지도하고 따른 두 사람의 돈독한 ‘사제의 정’이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서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황선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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